"스무 살 베트남 처녀가 서른세 살이 돼 대한민국의 여성이 됐습니다."
10일 '2015 전국 다문화가족 네트워크대회'가 열린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 별관 3층 대강당.
강당을 메운 400여 명의 박수를 받으며 한 여성이 단상 위에 올랐다.
주인공은 베트남에서 온 도티 빛 융(33) 씨.
검은색 원피스에 하얀 재킷을 입고 마이크 앞에 선 그는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읽었다.
여성가족부가 마련한 이날 이벤트는 다문화가족 정책 추진 10년을 맞아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주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마련됐다.
2003년 산업 연수생으로 한국 땅을 밟은 도티 빛 융 씨는 지난 10여 년간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아왔다.
구미 방직업체에서 통역 요원으로 근무하며 한국인 남편을 만나 2005년 가정을 꾸렸고, 2009년에는 어린 아들을 키우며 통번역사 자격증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구미 지역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통번역 업무를 도맡아 하는 도티 빛 융 씨는 의료 코디네이터와 보험설계사로도 일하며 이주여성을 돕고 있다.
평생 간직해왔던 선생님의 꿈도 한국에서 이뤘다. 지난해부터 경북 지역의 주말학교에서 베트남 2세 아이들에게 베트남어와 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것.
쉴 새 없이 달려온 도티 빛 융 씨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결혼 당시 시아버지의 반대에 부닥쳤던 그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던 시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순대를 사들고 찾아가곤 했다"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칭찬 한마디 못 들었지만 속 깊은 정은 고맙게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이유식을 만들다 '불린 쌀'이 뭔지 몰라 마트를 찾아갔던 일은 이제는 추억으로 남았다.
도티 빛 융 씨에게 대한민국은 어엿한 '내 나라'다.
그는 "내 나라 대한민국 여러분께 부탁드린다"며 "비록 태어난 나라는 다르고 한국말과 문화에 서투르지만 우리 모두 다 같은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똑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믿고 일을 맡겨 달라"며 "새로운 대한민국 사람이 된 우리는 대한민국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살아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는 그는 "단디('단단히' '제대로'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살겠습니다"란 다짐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전국 다문화가족 네트워크대회'는 올해 '多문화 대한민국, 多같이 만들어가요'라는 주제 아래 지난 10년의 다문화 정책을 돌아보고, 앞으로 방향을 고민하는 국제학술대회와 기념행사로 꾸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