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철 대형 교통사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

들뜬 기분에 긴장이 풀리거나 피곤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운전 중 잠깐의 실수나 방심은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낳기도 한다. 살인행위나 다름없는 만취 음주운전도 되풀이되고 있다.

뇌 질환 환자의 광란 질주 참극도 빚어졌는가 하면 자동차 결함이 의심되는 사고로 한 가정의 행복이 산산이 조각나기도 했다

졸음·방심·음주·광란 등 근절되지 않는 '나쁜' 운전 행위 때문에 애꿎은 희생자가 나오고,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해야 할 여름 휴가가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악몽이 되고 마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

지난 2일 낮 12시 25분께 부산 남구의 한 주유소 앞 도로에서 한모(64)씨가 몰던 싼타페 승용차가 도로에 주차돼 있던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한씨의 아내와 딸, 3살과 생후 3개월 된 외손자 둘 등 4명이 숨지고, 한씨도 크게 다쳤다.

한씨 부부는 친정에 다니러 온 딸, 외손자들과 함께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가던 중이었다.

경찰은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는 한씨의 진술을 토대로 자동차 결함이나 운전자 과실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5시 16분께는 부산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문화회관 사거리에서 김모(53)씨가 몰던 푸조 차량이 광란의 질주를 벌여 7중 교통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 3명이 숨지고, 피해 차량에 타고 있던 14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에는 이곳으로 휴가를 온 40대 여성과 그의 고등학생 아들도 포함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사고 차량은 피서객이 몰린 주말 오후 해운대 도심을 시속 100∼120㎞로 내달렸다. 사고 순간 브레이크도 밟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지난해 9월 뇌 질환의 일종인 뇌전증(간질) 진단을 받은 환자다. 뇌전증은 하루라도 약을 먹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발작하거나 의식을 잃을 수 있는 질환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그는 지난 7월 아무 일 없이 적성검사를 거쳐 운전면허를 갱신했다. 사고 원인이 뇌전증 때문이라면 허술한 적성검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7일 오후 5시 54분께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는 방모(57)씨가 몰던 관광버스가 승용차 5대를 잇달라 추돌했다. 이번엔 졸음운전이 원인이 됐다.

전날 버스에서 쪽잠을 잔 운전기사는 사고 당일에도 강릉과 삼척 등지를 운행해 피로가 쌓인 상태였다.

시속 105㎞로 질주하던 관광버스는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앞선 차량 5대를 차례로 덮쳤다. 이 사고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떠난 20대 여성 4명이 숨지고, 동해안 피서를 마치고 귀가하던 일가족과 버스 승객 등 3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같은 달 3일 오후 2시 30분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에서는 술에 만취된 김모(68)씨의 투싼 승용차가 도로를 역주행하다가 마주 오던 갤로퍼 차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갤로퍼 차량 운전자가 숨졌고, 함께 타고 있던 부모 등 3명도 크게 다쳤다.

당시 투싼 승용차를 몰던 김씨는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132% 상태에서 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피서철 교통사고의 대부분이 졸음이나 음주운전, 주의 태만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교통안전공단 안전관리처 이미연 교수는 "졸음이나 음주운전은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빼앗는 비극이자, 단란한 가정을 파괴하는 중대한 범죄인데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며 "긴장이 풀리는 휴가철일수록 안전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다듬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장거리 운전 전에는 충분히 휴식하고 타이어 등 차량 상태도 점검받아야 한다"며 "졸음을 예방하려면 자주 환기하고, 1∼2시간마다 쉬어가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