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상, 그 언어의 이중성
- 박 공 탁 세무사
최고령상! 세상에 이런 변이 있나. 내가 마라톤을 하고, 상을 타고 하는 일이.
그런데 상을 받고 보니 최고령상이라는 키워드가 ‘최고령’인지, ‘상’인지. 마냥 감격을 해야 할 것인지 슬퍼해야 할 것인지 그 이중성에 몽롱해진다. 시간에 쫓기고 척추 5번과 6번이 휘었다는 지리한 일상에서 무슨 그윽하고, 고상하고,우아한 탈출이 없을까를 고심하던 차에 ‘말아톤’을 보면서 마라톤을 생각했는데 첫 번에 대박을 터뜨리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이글을 읽는 당신! 우등상 말고 나같은 최고령상을 타본 일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희귀성이 어디 확률의 차원인가.
아내에게는 최고령이라는 글자는 덧씌워 놓고 ‘상’자만을 보였다. 안똔 슈낙이 보았다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것들’가운데 어린 아이의 울음 말고 “당신이 받은 최고령 상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한 줄이 더 보태질성 싶기도 하다.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국어책에 청춘예찬이라는 수필이 있었다.
첫머리가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청춘이라는 단어에는 확실히 그 자체로 가슴이 설레는 마력이 숨쉰다. 그런데 ‘청춘’을 ‘60대!’로 바꾸어 보자. 최고령상이라는 관을 씌워 놓는다 해도 “60대!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에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으니 최고령이라는 상을 받고 새삼 나이를 세어본다. 함께 산에 오르는 친구들이 40·50대이다 보니 나도 깃털이 같은 새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六十이면 耳順이라 했던가. 귀로 들어 느끼는 것이 물흐르듯 順하다 하였는데, 우리는 인생에 더 많은 날들을 보탤 수 없으나 하루하루에 더 많은 날을 보탤수는 있다는 쪽지쯤은 들을 수가 있으련만 그게 그렇지 못하니 어이 하랴.
내가 이번 출전만용을 부린 계기는 멀리 구사일생의 운전사고에서부터 출발 한다. 그날 나는 소원대로 부임한 제주에서 기껏 신이 나 있었는데 서울에서 내려온 아내에게 폼을 잡는다고 차한대를 빌려서 서귀포 관광을 시키고는 한라산 중산간도를 내려오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바른쪽 앞바퀴가 낭떠러지에 걸치는 사고를 당했다.
그 눈길에서 어떻게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았는지, 와이어를 묶고 꺼내준 이가 누구인지 나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때는 혼과 백이 나가 있었으니까.
어쨌든 그후 아내는 내가 운전하는 차는 절대로 타지 않았다. 저혼자 살아 남겠다는 심산이 괘씸하기도 하지만 부부동체를 고집할 수도 없는 처지인데다가 원래 혼자 어슬렁거리는 것을 즐기는 편이어서 그 후 나는 차를 버렸고 내 사무실을 갖고부터는 10여년을 빠른걸음으로 육십오분쯤 걸리는 7km 길을 집에서 여의도 까지 강을 끼고 걸어서 출근을 하는 축복을 받고 있다.
강물을 끼고 꾸불거리며 흐르는 길이 어머니 같은 정이 흘러서 만나는 사람과 마주 웃을수 있어서 좋고 계절이 바뀔때마다 길섶의 옹아리를 혼자 들을수 있어서 좋다. 반은 집오리가 된 물오리가 여의도 샛강 초입에서 손주녀석처럼 늘 가까이 까딱거린다. 열두마리중 어느날 한 마리가 줄어 애태우더니 어느날 그놈이 새끼 8마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콩알만한 꼬마들이 얼마나 귀엽고 재빠른지 물밖에서 장난치다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그러니 누가 이길을 걷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쨌든 그 덕분인지 나는 감기를 알아 본일이 없고 산에 오를 때는 좌장이 된다. 다리가 얼마나 튼튼 한지, 빨리 걷는 것만으로 마라톤 연습이 될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볼 마음이 일어 이번 대회에 출사표를 던져 보았다.
각설하고 2005년 11월 20일, 날씨 맑음. 기온 3.5도, 습도:49%, 풍속 1.95m/s, 배번 6022(60대의 22번째라는 뜻), 초겨울의 싸한 새벽공기가 오히려 상쾌하다. 나는 어제 아들 내외와 둘살 다섯살 손주, 딸 부부, 일곱살 외손녀에게 총 출동령을 내려 놓았다. “내가 내일 출정을 하니 10시 30분 회군 지점에서 환영 대열을 갖추도록 하라.” 나에게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온 가족을 마라톤가족으로 만든다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그러니 내가 중간에 기권을 하거나 낙오를 하는 일은 애초부터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운동장의 출발점을 떠나 청담대교를 향하는 대열에 휩싸이면서 부터 왼쪽 무릎이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쉴수도 없고 뛸 수도 없고 엉거주춤 걸어가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아침 집을 나오면서 내게는 나름대로 대붕의 뜻이 있었다. 上善은 若水다.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 하였으니 물처럼 가장 낮은데로 흐르자. 절대로 경쟁하는 마음을 버리자. 남들의 뒤에서만 뛰면 다리가 아플 것도 없지 않은가. 一切唯心造라 자위를 하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무릎도 좀 편해지는 것 같다. 호흡법 구호도 정했다. 마시는 두호흡은 ‘흡흡’ 대신에 ‘上善’ 내쉬는 두호흡은 ‘호호’ 대신에 ‘若水’로 했다.
그런데 신의 가호가 있었는지 어찌어찌 청담대교의 반환점을 돌고부터는 무릎의 통증이 사라진다. 속도가 붙기 시작 한다. 이때부터는 상선약수의 구호가 빨라졌는데 도착점에 가까워지면서 아무리 연도를 보아도 나를 환영하는 무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놈들이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다른 가족들은 다들 응원의 손을 흔들고 환호를 하고 있는데. 괘씸한 놈들! 그런데 마지막 운동장의 코스를 들어서자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다”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보란듯이 앞에 달리던 몇사람을 제치는 기염을 토하면서 두손을 번쩍 들고 대단한 할아버지의 인상을 심어 주려고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골인 지점에서는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기록 33분9초10, 종합순위 117/367. 3000명은 뛰었을 텐데 367명이라니 나머지는 다 어디 간 것일까. 어쨌든 2005년에 무엇을 했느냐구 묻는다면 할말이 생긴 셈이다.
그 날이 올까.
마음속 고래 한 마리
펄쩍 뛰어 밖으로 뛰쳐 나오는 그날
바다가 넘치지는 않을까.
(성석제의 글에서)
세무사신문 제428호(2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