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하장사로 이름을 날리던 최홍만 선수가 K-1(입식 격투기대회)에 진출해 화제가 되었다.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그는 지난 해 11월 K-1 월드 그랑프리를 두 번이나 차지한 강적 레미 본야스키(네덜란드)와 맞붙어 결국 패하고 말았다.
최홍만의 변신 자체가 화제 거리였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를 꺾은 세계적인 파이터 레미 본야스키가 은행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취미와 부업으로 시작한 격투기가 그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것이다.
‘에스크로 세무회계’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정연태(38)세무사와 임성우(37)세무사는 음악인으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2004년 여름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이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확인한 뒤 세무사와 변리사로 구성된 ‘터치다운’이라는 5인조 밴드를 결성했다.
‘터치다운’에서 정세무사는 리드보컬과 퍼스트기타를 맡고 있고 임세무사는 드러머로 활동 중이다. 터치다운은 매주 1회 이상 모여 2시간씩 공연연습을 하며 프로로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정·임 두 세무사는 세무사이자 음악인으로서 한 길을 걷고 있지만 지나온 길은 사뭇 다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품은 채 세무대학을 졸업해 세무공무원으로 지낸 정세무사는 일반적인 세무사개업 코스를 거쳤다. 반면 임세무사는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를 나와 20여년 가까이 음악을 하며 살아오던 중 고시를 패스해 세무사업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직원에 대한 믿음이 있어 가능
생활에 여유가 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특기를 키우거나 취미생활을 하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 세무사는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한 현실에서 당장 일하지 않으면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과 고속 경제성장을 거치며 경쟁적으로 살아온 탓에 삶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못했다”며 원인을 지적했다.
정세무사는 바쁜 와중에도 자신이 꾸준히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사무실 직원에 대한 100% 신뢰”라고 말했다.
“직원들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음악활동은 물론이고 사소한 업무도 마음 놓고 처리할 수 없다. 직원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잠시 일을 잊고 음악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무사, 삶의 여유를 가져야
정 세무사는 “세무사는 직업적 특성상 취미ㆍ여가활동이 꼭 필요하다”며 “남의 재산을 다루는 업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신경 써야할 곳도 많고 업무스트레스도 엄청나 때로는 잠잘 때까지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임 세무사는 “꼭 우리같이 밴드를 결성해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악기를 다루면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어 취미생활로 딱”이라며 회원들이 음악을 접해 볼 것을 권했다.
정 세무사도 이에 동의한다며 “주위에서 골프를 치라고 많이 권하는 데 골프는 취미로 적합하지 않다”며 “골프를 하면 거래처가 더 생기고, 인맥이 넓어지겠지만 순수한 의미에서의 취미활동이라기보다는 전략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음악활동을 한다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곳에 꾸준히 집중할 수 있어 정신적 안정을 줄 뿐만 아니라 똑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할 때마다 느낌이 달라 항상 새롭다”며 “짧은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이 삶을 재충전시켜주는 음악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임 세무사는 음악이 세무사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악기를 연주할 때 순간순간 선택에 따라 새로운 원리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진다. 세무예방책을 세우다보면 기존에 해왔던 논리와 답으로 몰고 가 그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생각에 제동을 걸어주고 문제해결의 원동력을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라고 말하면서 음악으로부터 얻는 창조적이고 체계적인 생각이 세무사업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은 삶을 돌아보게 해
정 세무사는 수년전부터 중증 장애아들이 모여살고 있는 화곡동 ‘소망의 집’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정 세무사는 “그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시작한 일인데 중증장애를 앓고 아이들이 서로 아끼고, 베풀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많이 받았다”면서 “저 친구들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데 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되레 봉사하러 가서 봉사를 받고 돌아온다”고 봉사활동을 권했다.
그는 “밴드활동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며 봉사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세무사사무소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두 세무사는 단순히 음악만으로 뭉친 것은 아니었다. 얘기를 나눠 볼수록 두 세무사가 지닌 삶의 나침반이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 세무사는 “인생에서 돈과 명예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어떻게 완성해 가느냐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의 인생을 완성해주는 음악이야말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세무사도 “돈과 권력에 연연하다보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서 “돈을 떠나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하며 살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하다”고 현재의 삶에 만족해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얼마만큼의 부를 지녔는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 두 세무사는 “3년 정도는 기본기에 충실하고 이후 우리 것을 만들어내겠다”며 뚜렷한 목표를 드러냈다. 또 “세무사회에서 불러만 주신다면 홍보차원에서 행사를 준비할 의향이 있다”며 세무사의 이미지를 고취시키는데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내보였다.
임 세무사는 “예술대학을 졸업해 나름대로 방송을 안다”며 “세무사의 이미지를 높이고 세무사회를 홍보할 기회가 있으면 나를 불러 달라”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중ㆍ고교시절 그려왔던 꿈과 포부는 온데간데없고 높은 자리와 많은 연봉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게 대다수의 현대인.
자신이 꿈꿔온 삶을 위해 노력하고 즐길 줄 아는 정연태세무사와 임성우세무사는 앞만 보고 뛰어온 우리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게 한다.
세무사신문 제435호(2006.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