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세는 성(性)·신분·소득 등에 관계없이 성인이 된 사람에게 부과된 일률동액(一律同額)의 조세로 납세자의 급부 능력을 무시한 점에서 효과가 단순하며 역사상 일찍부터 채택되었다.
그리스·로마·이슬람의 여러 나라와 러시아 등에서는 노예주에 대한 공조의 형식으로 징수되었으며, 중세의 서유럽에서는 인격적으로 신분이 부자유스러운 농노가 영주에게 사람 숫자대로 납부하는 현물 및 현금공조였다.
중세 후반 이후는 국왕이나 영방(領邦)국가의 군사비 조달 등의 목적으로 징수되다가 18ㆍ19세기에 대부분 폐지되었으나 20세기에 들어서는 식민지 지배의 일환으로서 채용되었으며, 스위스·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도 정치적 권리에 따르는 세금으로 이용되었다.
캐나다는 1885년 BC주 지역에서 철길을 건설하기 위해 중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했는데 이들 중국인 노동자들이 모국의 부인과 아이 등 가족을 캐나다로 데려오기 위해 캐나다 정부에게 지불해야 했던 대가로 인두세를 내기도 했다. 1885~1923년 기간 동안 총 8만1천명이 2천3백만 달러를 지급했다. 중국인 철도노동자들의 보수가 1년에 1백 달러 정도였던 것으로 미루어 1인당 약 300달러의 비싼 대가를 지불한 셈이다.
독일에서도 1930년 인두세 비슷한 시민세가 응급적 세금으로 징수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의 군포(軍布)에서 유래했으며 1871년(고종 8) 호세(戶稅)라 하였고 1912년 국세에서 지방세로 이양되었다가 1961년 일단 폐지, 1973년 다시 신설되어 오늘날 ‘주민세’로 각 시·군의 지방세로 징수되고 있다.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운영비용을 분담하는 데에 목표를 두는 목적세이며 균등할주민세와 소득할주민세로 나뉘는데, 균등할주민세는 담세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과거 인두세(人頭稅)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세무사신문 제441호 (2006.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