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세는 영국의 윌리엄 3세가 아일랜드 구교도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창문의 개수에 맞춰 부과한 세금으로서 유럽 각국에서 도입과 폐지를 반복했던 세금이다.
전에 존재했던 벽난로세(Hearth Tax)가 세금 징수를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 조사를 하는 일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반발이 심해지자 폐지되고 그 대신 1696년에 창문세가 만들어진 것이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벽난로를 없앴던 사람들이 이제는 창문을 없애기 시작했고 신축 건물에는 아예 창문을 달지 않는 등 건물들의 외형이 기형적으로 변해갔다.
당시의 세금은 어려운 서민들이 햇빛을 포기할 만큼 무서웠던 것이다.
창문세는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일종의 재산세로서 좋은 집은 창문도 많을 것으로 가정한 것이 과세근거가 됐다. 근대 유럽에서 부동산 크기와 세금을 연계한 첫 사례라고 볼 수 있으며 1851년 주택세가 도입될 때까지 존속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1789-1794)의 배경에도 창문세가 존재한다.
루이 16세는 가뭄과 잦은 전쟁 등으로 나라가 어려웠음에도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미국식민지인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었고 프랑스의 살림은 거의 파산에 이른다.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거두어 들인 창문세 등의 과중한 세금은 급기야 시민계급의 반발을 가져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진다.
프랑스는 창문의 갯수에 비례해 세금을 물린 영국과는 달리 창문 폭에 비례해 세금을 물렸다.
실내 온기가 창을 통해 빠져나가므로 비싼 땔감 값을 부담할 수 있는 부자만 창을 넓게 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인데 이후 절세를 위해 창문 폭이 좁고 길이가 긴 창이 유행한다.
세균학의 발달로 좁은 창문이 세균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1926년 창문세는 사라졌다.
이런 이유로 서양에서는 지금도 ‘세금을 더 거두려고 억지로 만든 세목’을 빗대어 창문세라고 부르고 있다.
세무사신문 제442호 (200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