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세연구원이 3일 열린 공청회에서 공개한 비과세ㆍ감면제도 운용방안은 20조원에 달하는 비과세ㆍ감면에 대한 대수술을 의미한다.
각종 비과세 및 세금우대 금융상품의 지원 대상을 취약계층으로 제한하고, 상시화된 임시투자세액공제도 경기조절 기능 회복에 한정하는 한편 농어민 면세유 지원도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올해 연말 일몰 도래하는 55개 조세감면 항목들 중 24개는 더 이상 연장하지 않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그러나 허용석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은 "조세연구원의 정책 제안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정부는 올해 말 일몰 도래하는 55개에 대한 검토 결과를 이달 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당장은 조세연구원의 제안 중 올해 일몰 도래 조항을 중심으로 정부정책이 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책으로 확정되더라도 서민경제 회복에 '올인'한 열린우리당과 감세론을 펴고 있는 한나라당이 포진한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정부의 의지가 어느정도 관철될 지는 미지수다.
◇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다'는 것이 비과세ㆍ감면이다.
이런 속성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생겨난 비과세ㆍ감면 조항이 지금은 무려 226개에 달한다. 감면금액도 작년 기준으로 19조9천억원으로 관련국세의 14.5%에 이른다.
2000년 13조원에서 5년만에 7조원이 늘어나며 국세보다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정밀한 분석과 설계 없이 남발된 탓에 실제 의도했던 대상이 얼마나 혜택을 입고 있는지조차 파악 안되는 비과세ㆍ감면도 허다하다.
조세의 중립성과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어 조세.재정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정비돼야 한다고 줄기차게 지적해왔다.
지금 조세감면 운용에 대한 원칙을 정해놓지 않으면 '둑이 무너지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조세연구원은 우려했다.
현재 국회의원들과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하고 있는 또 다른 비과세ㆍ감면 조항들도 20조원에 달한다.
이는 현재 시행중인 비과세.감면 규모와 맞먹는다.
정부도 조세감면 정비를 마냥 미룰 수만은 없다는 인식이다. 늘어나는 복지지출에 충당할 돈이 필요한데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은 증세 논란에 부딪혀 어려운 만큼 세출구조조정이나 비과세ㆍ감면 축소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올해 일몰 도래 55개 중 24개 폐지.축소
관련 국세 대비 비과세ㆍ감면 규모를 2005년 14.5%에서 2010년 13% 수준으로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세연구원은 제시했다.
국가재정법에 조세감면 총량한도제를 두고 비과세 감면 비율을 매년 일정 한도 내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기존 감면제도에 대해 목적달성 여부와 감면제도간 우선순위를 평가하는 조세감면평가 제도를 마련하고 새로 신설할 때에도 정밀한 분석 보고서를 담도록 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일몰이 없는 122개에 대해서도 2-5년의 범위 내에서 모두 일몰을 신설함으로써 걸러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항목별로는 올해 일몰 도래하는 55개의 경우 22개를 축소.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각종 준비금제도와 간접투자기구에 대한 증권거래세 면제, 고용창출형 창업기업 세액감면제도 등은 없애도록 했다.
자경농민에 대한 증여세, 농지 양도세 면제도 상속 등에 대한 세금감면을 통해 지원되고 있어 폐지하고, 지원목적이 달성된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에 대한 과세특례제도 등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일몰이 도래하지 않는 조항들 중에는 농어민에 대한 면세유를 축소하고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시기에 따라 적절히 운용하는 한편 각종 비과세금융상품은 취약계층이나 주택마련 등 특별한 목적 이외는 축소.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입법과정 진통 따를 듯
농어민이 아닌 준조합원에게도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어 여유 계층의 절세 수단으로 활용되는 농수협 비과세예탁금을 보자.
애초 2004년부터 5%로 저율 과세하고 2005년에는 세금우대저축 형태로 전환하려고 했으나 현재 일정은 2007년 5% 과세, 2008년부터 9% 과세로 변경됐다. 그러나 연기된 일정도 지켜질지 불투명하다.
이해집단의 반발과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농수협 비과세예탁금 말고도 이런 전례가 수없이 많다는 점이다.
혜택을 얻는 대상이 아예 없어졌거나 매우 적은 경우, 다른 방식으로 지원을 대신해주는 경우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폐지.축소됐다.
더구나 지금은 여당이 민생경제 살리기에 나서면서 정치논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과세ㆍ감면 제도 정비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적절한 때가 아닌 셈이다. 오히려 정부와 열린우리당간 파열음만 키울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