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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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3596]
역사속 세금 이야기 ④공부제[貢賦制]
농민 죽음 부른 고려의 공물 부과

 

 

고려시대 토지수확의 일반적 세율은 10%였으나 국공유지에는 1/4의 세율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인구와 토지의 비율이 각각 달라 세금액수의 산정이 어려웠다. 한편 각 지방의 토산물과 가내공업 생산물을 납입하는 공부(貢賦)제가 있었는데 공물의 종류가 다르고 잡다해 역시 많은 문제점과 폐단을 가져왔다.


이에 고려 후기에는 잡공(雜貢)이라는 새로운 세금 제도가 등장했으며 인종(仁宗) 이후 새로운 현물세가 추가 되었다. 자기 지방에서 나지 않은 공물을 부과하는 경우가 빈번해졌고 농민들의 생활은 궁핍해졌다.


농민들은 자신의 농산물을 헐값에 팔아 고가의 물품을 구입해서 납부해야 했고 부패한 관리들은 3년치의 공물을 미리 징수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어려운 형편의 농민들이 기한 내 공물을 납부하지 않으면 중간에 대납업자로부터 청부납입을 하게 했는데 이들은 2배 이상의 물품을 받아 폭리를 취했고 자본을 축적한 대납업자들은 관리와 결탁해 일부러 기한을 넘겨 납입함으로써 대납의 폭리를 늘려갔다.


이러한 공부제의 폐단은 국가재정과 일반백성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쳐 ‘고려사’에 의하면 경상도의 한 농민은 가산을 다 팔아도 세액을 충당치 못해 목을 매어 죽었고 한 관리는 과중한 징세 부담으로 자살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국가의 징발과 중간관리의 착취로 시달리던 농민들은 마침내 가업을 폐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주군이 텅비는 지역이 생겨났고 국가의 재정은 더욱 혼란해졌다.


한편 명은 고려로부터 매년 토산물을 증액시켰고 5년간 약속한 만큼의 토산물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신으로 가 있던 홍상재(洪尙載)를 유배보냈고 명태조의 생일에 정몽주가 사신으로 가 그를 구해내기도 했다.

 


세무사신문 제444호(20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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