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김황식 대법관)는 세금 납부를 피하려고 올케 이름으로 아파트를 샀다가 소유권을 넘겨받지 못하게 된 정모씨가 올케를 상대로 낸 소유권말소등기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가 지급한 매매대금이 원고의 자금이라는 점에 대해 피고의 반박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다. 원고가 가짜 임대차 계약서를 법원에 제출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명의신탁자로서 소유자라는 원고로서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명의신탁약정을 금지한 부동산실명법이 투기, 탈세 등 반사회적 행위를 방지하는 목적으로 제정됐다고 하더라도,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근거해 타인 명의의 등기가 됐다는 이유로 불법 제공된 재산이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항소심은 여러 증거를 바탕으로 명의신탁 약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설령 약정이 있었더라도 민법에 정해진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거나 신의성실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헌법상 사적 자치(私的 自治)의 원칙의 하나인 계약자유의 원칙을 근거로 개인 간의 명의신탁 약정은 유효한 것이라는 판례를 고수하면서 채권자의 강제집행(1993년 판례), 양도소득세 회피(1991년 판례) 목적으로 타인에게 부동산 명의를 신탁해도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부동산실명법이 명의신탁약정으로 인한 물권 변동만 무효로 하고, 명의신탁자가 등기회복 등 권리행사를 하는 것을 막지 않는 대신 행정적 제재나 형벌을 부과해 사적자치와 재산권 보장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법 민사2단독 이종광 판사는 올 6월 부동산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외삼촌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넘긴 박모씨가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에서 "불법적 목적의 소유권 이전에 대해 명의 회복을 요구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하는 등 대법원의 판례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 판사는 판결문 말미에 "수천억원의 형사추징금을 받았던 전직 대통령이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어 추징금을 납부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그 자식들은 수억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우리의 사법 현실이다"며 부동산실명법의 허점과 대법원의 판례를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