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춘의 역사는 고대 인도의 무희(舞姬)가 사원의 참배자에게 전 여성의 대표로서 몸을 맡기고 그 보수를 받은 풍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페니키아·아시리아·페르시아 등에서도 이러한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총칭해 사원매춘(temple prostitution)이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여러 종류의 매춘이 성행해 ‘포르노이’라는 최하급 매춘부 그룹과 ‘헤타이라’라는 고급 창녀 그룹이 있었으며 포르노이와 헤타이라 사이에도 여러 계층이 있어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졌다.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는 헬라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원래는 ‘매춘부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포르노그라피는 당시 그리스인들에 의해 독특하고 빼어난 문학양식을 이루기도 했으며 근대와 현대 문학에도 변형된 형태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듯 그리스 사회는 매춘을 지극히 당연한 생업으로 여겨 많은 도시국가들이 매춘 종사자들의 수입에 ‘매춘세’라는 세금을 매겼다.
그리스는 매춘세로 아프로디테 신전 같은 건물을 세우기도 했으니 매춘이 얼마나 공공연히 시행되었는지 알 수 있다. 매춘세만을 징수하는 전담 세무공무원이 있을 정도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춘희(椿姬)’로 상징되는 고등매음부가 생겨났는데 이들은 창녀와 정숙한 여성의 중간형으로, 연애를 목적으로 하는 반사교계(半社交界)의 여성들이었다. 교양이나 사교성도 갖추었으며, 변형된 형태의 매춘부로서 정치나 사교생활 또는 유행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는 성병의 무서움으로 검진이 시작되면서 매춘의 공공성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한편,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문명국들이 점차 매춘금지법을 제정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거의 모든 나라가 매춘을 법으로 금지해 매춘세는 역사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세무사신문 제453호(2007.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