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14세기 국토회복 운동으로 강해진 카스틸(Castile)과 아르곤(Argon) 두 왕국이 있었으나 1469년에 카스틸의 이자벨라 공주와 아르곤의 페르난도 왕자의 결혼으로 두 왕국은 하나가 된다.
가톨릭 신봉자였던 그들은 1492년 스페인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마지막 거점 그라나다를 함락, 국토회복운동을 성공시킴으로써 스페인은 절대왕정시대에 접어들었다.
당시 스페인은 카스틸, 아라곤, 교회 그리고 아메리카 식민지가 왕정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특히 왕이었던 카를 5세는 세금저항이 적었던 카스틸과 교회를 통해 수입을 얻었는데 교회의 경우 공식적으로 면세였
으나 교회의 십일세 수입의 22%를 특별세로 납부해야 했다.
카스틸 지역의 경우 세금의 부가가 의회를 거치지 않아 세금에 대한 횡포가 심했다.
가장 악명높았던 세금이 지금의 부가세와 유사한 ‘알카발라’(alcabala)라 불리는 소비세였다.
이는 거래되는 모든 단계의 매출에 부과됐으며 대략 세율이 10%였는데 물가상승과 함께 증가했고 그 자체가 물가상승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알카발라는 같은 물건이라도 거래단계마다 과세됐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유발시켜 생산을 둔화시켰으며 이는 스페인의 산업과 무역에 역효과를 주게 된다. 상인들의 이윤까지 고려하면 4번 정도 손이 바뀌면 물건값이 두배로 껑충 뛰어 올라 외제보다 값이 비싸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이유로 알카발라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사벨라 여왕은 이 세금의 폐지를 유언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1534년 카를 5세는 소비세를 정액세로 개정하도록 허용했고, 전체 세금의 납부금액이 일정액으로 정해지자 세금 규모의 증가를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오늘날에도 정부가 세수를 늘리려고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인상할 때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다. ‘증세’를 위해 손쉬운 곳에서만 세금을 늘릴 때 국민적인 설득력을 갖기가 힘들어 조세저항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3월 3일은 납세자의 날이었다.
‘세금’이 과연 ‘아름다운 나눔’이 되고 있는지 그 쓰임에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세무사신문 제456호 (2007.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