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8일 사실혼 관계의 여성에게 명의를 빌려주고 토지 거래 중도금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곽모(47)씨에게 귀금속과 대출금을 횡령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8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곽씨는 2003년께 피해자 몰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8천여만원과 귀금속을 가로채고, 피해자와 명의신탁 약정을 맺은 뒤 임야 4천여 평을 사들이려다 계약이 해지돼 돌려받은 중도금 2억6천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기소됐다.
재판부는 "계약명의신탁에서 명의를 빌려준 사람을 타인의 재산을 보전ㆍ관리하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없어 수탁자(명의를 빌려준 사람)가 신탁자 허락없이 대금을 다른 용도에 사용했거나 반환을 거절했다고 해도 이를 횡령죄 또는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계약명의신탁은 명의신탁약정을 체결하고 수탁자가 매매계약 당사자가 돼 매도인과 매매 계약을 체결한 후 수탁자 앞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치는 것을 말하는 데 대법원은 2000년 3월에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부동산실명법에는 계약명의신탁에 의한 토지 거래는 매도인이 명의신탁을 몰랐다면 약정은 무효더라도 매매계약은 유효하다고 규정하고 있어 '명의수탁자를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보는 게 기존 판례다.
다만 대법원은 2002년 12월 부동산실명법의 이 조항이 명의신탁자에게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막는 취지의 규정이 아니므로 수탁자가 신탁자에게 자신이 취득한 부동산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해 민사 소송을 통해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