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1일 오후 공공기관 감사들의 남미출장과 관련해 개최된 감사들과의 간담회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공공기관 감사의 역할 등에 대한 근원적인 제도개선을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감사는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이 파견한 감찰관으로서 공공기관을 견제해야 하는데도 관행에 따라 외유성 출장을 떠난 것은 문제의식의 부재를 드러낸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날 오전 발표했던 제도개선 내용보다 훨씬 강화된 방안을 내놓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이런 강경한 분위기에 따라 감사들의 남미 여행단장이었던 최동규 가스안전공사 감사가 전격 사퇴를 하는 등 남미출장 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 고강도 제도개선 전망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강경하고 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기획처 장관은 오전에 발표한 제도개선 방향을 최종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발표내용 중에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없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또 공직사회, 공기업전반의 해외연수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하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획처는 공공기관 해외연수 개선방안 등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언급은 보다 '근본적이고 확실한' 재발 방지대책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장병완 기획처 장관도 이날 간담회에서 "국민들은 이번 사안을 보면서 감사들에 대해 시대변화에 둔감한 윤리의식, 비효율적이고 무사안일한 행태, 전문성.책임성을 비롯한 자질 부족을 느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장관은 "감사 해외연수 문제로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면서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진 것이라 할지라도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 잘못된 행태는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처는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남미출장 감사들에 대해 엄중 경고하는 한편, 여행경비를 반납토록 하고 성과급.연임 등에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최동규 감사 사퇴..줄사퇴 가능성은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가운데 여행을 기획했던 최동규 가스안전공사 감사가 이날 오후 자진 사퇴를 했다. 이에 따라 남미로 여행을 떠났던 감사 21명 가운데 사퇴하는 사람이 더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감사들의 자진 사퇴에 대한 전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감사들의 남미 출장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들이 대두됐지만 법률상으로는 해임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운영법 제35조는 '기획처 장관은 비상임이사 및 감사가 규정에 따른 의무와 책임, 직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를 게을리하면 공공기관운영위의 심의.의결을 거쳐 해임을 임명권자에게 건의할 수 있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해당기관에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으로는 남미출장 감사들에 대한 해임 조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의견이었다. 아울러 원칙이나 규정과 상관없이 여론에 따라 해임하거나 사퇴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않았다.
기획처 관계자는 "정부가 감사들에게 사퇴압력을 가하지는 않았다"면서 "최 감사도 자발적으로 판단했으며 사전에 정부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해외연수 어떻게 결정됐나
공공기관 감사포럼 소속 감사들의 출장은 추진 과정 등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기획처의 발표내용에 따르면 지난 2월께 가스안전공사 최동규 감사 등 8∼10명의 감사들이 한 모임에서 남미 해외연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후 이들은 사단법인 감사협회의 글로벌 세미나 형식으로 추진했으나 협회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협회차원에서 기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협회측의 설명이었다.
이어 이들은 감사 혁신포럼의 의장인 곽진업 한국전력공사 감사에게 포럼 명의로 남미여행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곽 감사는 이를 수용했고 여행은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규정에 따른 절차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포럼의 회칙에 따라 남미여행은 포럼 운영위원회의 제안을 통해 전체회의에 회부돼야 하지만 의장의 결정으로 절차가 마무리됐다.
또 포럼의장은 가스안전공사 최 감사에게 의장의 공문시행을 위임하고 최 감사는 공문시행을 여행사에 맡기는 등 문서처리도 편의적이었다. 해외여행을 신청한 감사는 34명이었으나 13명은 개인사정으로 취소해 출장자는 21명이었다.
◇ 프로그램 어떻게 결정됐나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상당부분은 여행사가 결정했다.
방문 대상국가를 칠레.브라질.아르헨티나 등 3개국으로 선정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순히 브릭스 국가이며 칠레가 FTA가 체결했고 감사들의 방문경험이 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구체적인 여행 목적이나 방문이 필요한 기관에 대한 사전 검토가 선행됐어야 했는데, 이런 과정은 없었다.
아울러 감사들이 방문키로 했던 칠레 산업안전협회(ACHS), 칠레 국영방송국(TVN), 브라질의 리오 항구공사(CDRJ), 아르헨티나의 수자원공사(AS S.A.) 등도 사전지식 없이 방문을 허락하는 기관 위주로 선정됐다.
브라질의 이과수폭포 방문은 연수 안내 최종책자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구입해 놓은 이과수 항공편을 유지한 것으로 미뤄 폭포 관광의사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기획처는 설명했다.
이번 출장에 대한 기관의 승인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일부 기관의 경우 감사 본인의 전결로 예산을 집행했다. 또 21개 기관중 여행출장 보고서 제출의무가 없었던 곳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