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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거울> 김산과 아리랑
[연합뉴스 2007-06-20]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70년 전, 혁명 열정과 항일 의지를 뜨겁게 불사르던 33살의 조선 청년이 눈 푸른 미국 여인을 만나 자신의 역정과 신념을 유언처럼 털어놨다. 
장소는 만리장정의 종착지인 중국 옌안(延安). 이 여인은 이곳에서 소집된 중국공산당대회에 국민당의 감시를 뚫고 참석한 몇 명의 외국인 중 한 사람이었다. 이들의 대화는 5월 초부터 두 달 동안 22차례에 걸쳐 계속됐다.

이 만남은 잃어버릴 뻔했던 항일투쟁사의 중요기록문학 '아리랑(Song of Ariran)'을 잉태시켰다. 모두 7권의 이 구술노트는 4년 뒤 뉴욕에서 책으로 출간된다. 그리고 대화의 주인공인 이 조선청년은 구술 이듬해인 1938년에 체포돼 총살당한다.

조국 해방을 꿈꾸며 중국 공산당의 '불화살'로 대륙을 넘나들던 이 청년이 바로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 '아리랑'을 펴내 김산의 혁명열정과 조선의 아리랑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이는 님 웨일스였다.

본명이 헬렌 포스터 스노인 님 웨일스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세계적 중국 전문가였던 에드거 스노의 부인이다. 남편이 '중국의 붉은 별'로 필명을 날렸다면, 아내는 '아리랑'으로 명성을 얻었다. '중국의 붉은 별'의 주인공인 마오쩌둥과 '아리랑'의 핵심인물인 김산은 중국과 조선의 대표적 혁명가들이었다.

그 김산에게 아리랑은 무엇이었을까? 한 전투에서 패한 뒤 김산은 중국인 동지들과 함께 식량을 구하러 다니던 중 아리랑을 부른다. 그는 "우리는 불 옆에 둘러 앉아 우리 민요 아리랑을 부르며 모두 울었다"며 님 웨일스에게 당시를 회상했다. 곡조 자체가 슬픈 노래이기도 하지만 조국을 잃고 이국의 혁명전쟁에서 겪는 처지가 한스러워 조국의 민요로 고통을 달래며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공저 '아리랑'을 통해 김산은 아리랑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10여 차례에 걸쳐 피력한다. 그에게 아리랑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죽음과 패배의 노래'임과 동시에 해방과 독립의 희망가였다. 노래 속의 열두 구비가 죽음과 패배를 의미한다면, 열세 구비는 이를 뛰어넘어 얻어내는 해방과 독립을 뜻한다. 즉, 열두 구비는 기어코 넘어야 할 극복과 승리의 대상으로 조선인의 앞에 가로놓여 있었던 것이다.

'아리랑'이 미국에 이어 1953년 일본, 1977년 홍콩에서 책으로 발간됐지만 정작 김산의 고국인 한국에서 출간된 것은 1984년이 돼서였다. 조우화 씨의 번역으로 김산과 님 웨일스의 대화 47년 만에 한글판으로 햇빛을 봤다.

그러나 사람들은 혁명가이자 항일운동가로서 김산의 발자취를 좇는 데 주목했을 뿐 김산이 힘주어 강조했던 아리랑의 정체성과 상징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표제가 '아리랑'이었음에도 말이다.

김산은 "아리랑은 우리의 단순한 민요가 아니다"고 설파한다. 민요 그 이상의 절대적 가치를 지닌 노래로, '민족' '역사' '조국' '절대자'를 생각하며 오랫동안 불러왔다는 얘기다. 아름다움과 동시에 비극적인 이 노래는 고통 받는 민중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왔다고 그는 본다.

늦은 감이 있지만, 김산의 생애와 신념을 민요 아리랑에 초점을 맞춘 음악앨범이 나와 반갑다. 신나라가 기획한 이 앨범은 경기명창 김영임 씨가 부른 '아리랑고개' '아리랑연가' '아리랑옥중가' 등이 수록된 가운데 김산의 신념이 담긴 '아리랑, 사형수의 노래'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같은 글도 국문과 영문으로 나란히 낭독돼 그의 진면목을 살피게 한다.

한민족의 정신적 원형이 돼버린 아리랑을 우리가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타계 3년 전인 1994년, 님 웨일스는 "나를 만나러 온 한국인들은 아리랑이 어떤 노래냐고 내게 묻는다"며 고개를 가로저어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이런 상황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투옥 때 톈진으로 이송되는 기차에서 김산은 일본인 형사에게 말한다. "오늘 같은 날에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어머니처럼 간절한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라는 뜻이다. 저항정신과 독립의지에서 천지합일과 해원상생, 조국통일의 의미로 승화된 아리랑의 정신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가슴에 힘차게 메아리지지 않는다면 부끄러움을 또하나 더하는 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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