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에는 광수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어서 탄산 가스를 포함하고 있는 천연광수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탄산수 제조가 유럽 각지에 보급되었고, 탄산수에 설탕이나 향료를 첨가한 음료도 개발됐다.
이는 곧 미국과 일본에까지 전해지고 이후 청량음료세를 탄생시킨계기가 된다.
메이지시대(1868-1911) 한 영국인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자국민들을 위해 만들었던 레모네이드가 일본 소프트 드링크의 시발점이 됐으며, 이후 전국 각지에서 제조되었다.
1877년 기시다 긴코라는 사람이 소프트 드링크를 ‘청량한 음료’라 명명한 데서 ‘청량음료’라 불리게 됐다.
1902년에는 ‘사이다’가 제작돼 음료의 판매가 급속도로 많아졌으며, 1904년 러·일 전쟁의 승리로 판매도 활기를 띄었다.
다이쇼시대(1912-1926) 처음으로 청량음료의 과세문제가 대두된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고 1918년 독일의 패배로 전쟁은 막을 내린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은 4년의 전쟁으로 재정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새로운 과세에 눈을 돌리게 된다.
드디어 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18년 청량음료세가 시행되었다. 청량음료세 시행으로 제조장마다 면허가 필요하게 되고 영업에 대한 규제와 단속이 이어지자 청량음료의 발전은 주춤해졌으며 토마토 쥬스, 야쿠르트 등의 제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청량음료세는 일본의 영향에서인지 일제시대 주세, 사탕소비세, 전기가스세, 직물세, 입장세 등과 함께 소비세로써 우리나라에도 존재했다.
세무사신문 제465호 (2007.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