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전쟁(1095∼1456)은 유럽기독교와 이슬람교간 종교와 문명의 충돌이었다.
십자군전쟁이 교착상태에 들어섰던 1415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이 물러났고, 포르투갈(항해왕자 엔리케 사단)이 이슬람의 해안기지 세우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포르투갈인들이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하자, 교황은 높이 치하했으며 전폭적인 지지를 하기에 이른다.
이에 남방한계선 아래까지 엔리케의 항해가 시작되었고, 1441년에는 아프리카 사정을 확인하고자 거주하던 흑인을 잡아왔으며 사금덩어리를 배에 싣고 오기에 이르렀다.
이후 5년간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납치하거나, 추장으로부터 이들을 사 들여와 1천명의 노예를 확보하게 된다.
엔리케는 섬에 요새를 지었고 포르투갈 최초의 해외무역관을 만들어 독점적인 항해권을 유지해갔다.
잡혀온 흑인들은 노예시장을 통해 식민지의 사탕수수 농장, 브라질,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나갔다.
엔리케는 잡아온 노예 1/5을 노예세로 거두었는데, 이는 교황이 눈감아 줌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교황의 승인하에 노예제도는 합법화되었고 엔리케는 독점적인 항해권을 근거로 노예세 창설후 계속적으로 부를 축적해 포르투갈이 선도하는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노예세는 사람의 인권보다 종교의 권위가 앞섰던 세금제도로 종교를 빌미로 한 인권탄압이 가능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노예제도는 비정상적인 시대에 잘못된 종교권력이 빚어낸 안타까운 제도라 할 수 있겠다.
세무사신문 제470호 (2007.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