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가 BBK의 주가조작으로 인한 소액투자자 피해와 관계가 있는 지를 풀 열쇠로 지목되어온 BBK 전 대표 김경준씨가 11월14일께 한국으로 송환될 것으로 파악되면서 새삼 김씨와 BBK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경준은 누구
한국에서 옵셔널벤처스코리아라는 투자회사를 운영하다 2001년 12월 공금 380억원을 빼내 미국으로 도피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는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똑똑한 투자의 귀재로 인정받았다.
35년전 당시 6세의 나이로 부모의 손을 잡고 미국으로 이민을 온 김씨는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가 다닌 아이비리그의 코넬대를 졸업했고 이후 모건스탠리 등에서 실무를 익혔다.
김씨와 한번이라 접촉했던 이들은 미남형인 그가 화려한 말솜씨에다 적극적이면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누구나 쉽게 사귀게 되는 친화력까지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에서 실물경제를 익히던 김씨가 이명박 후보와 관계를 맺게된 것은 1990년대 중반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를 통해서였다.
이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그만두고 금융 그룹을 일굴 포부를 갖게 되면서 김씨와 자연스레 동업자 관계로 발전하게 됐다.
한국에 들어와 파생상품 분야를 다루는 'BBK 투자자문'을 설립한 김씨는 2000년 이 후보와 함께 'LK e-뱅크'라는 지주 회사를 설립하고 그 밑에 자회사로 e-뱅크증권, BBK 등을 두었으나 이 후보는 BBK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2001년 옵셔널벤처스 주가 조작 파문으로 궁지에 몰렸던 김씨는 결국 미국으로 도주했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런 사실들을 숨기고 활동하다 한국 법무부가 미 법무부에 범죄인 송환 요구를 신청함에 따라 2003년 5월 베벌리힐스의 자택에서 연방수사관 등에 의해 체포됐다.
김씨는 이후 횡령한 돈을 미국으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돈세탁을 한 혐의와 함께 스위스에 비밀계좌가 있음이 드러나고 여러건의 민사소송까지 제기되면서 자산동결조치가 취해졌으며 사망한 동생의 여권을 이용, 한국을 드나들고 한국에서의 법인 설립시 미국 법인 서류 위조 사실도 드러나 공문서 및 사문서 위조 혐의가 추가됐다.
김씨의 신병을 한국에 인도하라는 첫 판결이 2004년 나왔지만 김씨는 민사소송으로 인한 재산 상실을 막겠다며 갖가지 이유를 들어 계속 항소하면서 한국행을 극력 저지하고 있던중 심경을 바꿔 지난달 3일 한국으로 가겠다며 "자발적 항소 각하서"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BBK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김경준씨가 투자자문회사 BBK를 설립한 것은 서류상 1999년 4월이다. 김씨는 BBK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것으로 해 활동하면서 같은해 10월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이명박 후보도 이 회사에 투자를 하면서 김경준씨와 본격적으로 동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김씨와 이 후보는 2000년 2월 영문 이니셜을 따고 자본금 50%씩을 출자해 'LKe-뱅크'를 설립했다.
본격적인 영업활동을 시작할 무렵 BBK의 불법 행위 조사가 착수돼 BBK의 등록 취소가 검토되는 사이 김씨는 2001년 1월 '광은창투'를 인수, 옵셔널 벤처스로 이름을 바꿨다.
2001년 3월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BBK가 투자자들에게 위조된 펀드운용 보고서를 전달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투자자문업 등록이 취소됐는데, 이 후보는 한달뒤인 4월 LKe뱅크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김씨와의 관계를 청산했으나 김씨는 미국 시민권자 8명을 이사진으로 해 '광은창투'를 새 출발시킨다고 발표하면서 옵셔널벤처스 주가는 폭등했다.
실제로 옵셔널벤처스는 이 후보가 실제 대주주라는 소문까지 보태지면서 1천원대이던 주식이 3개월만에 8천원대로 급상승했으며 김씨는 상당한 이익금을 챙기고 공금을 챙겨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고 이 결과 여러 소액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다는 것이 'BBK주가조작'의 실체이다.
특히 소액 투자자들은 김씨가 사기 행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 후보가 동업자 내지는 후견인으로 알려졌기에 투자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후보는 공모 혐의를 전면 부인한채 자신도 피해자임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