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일년에 두 차례 장마가 몰아친다. 그런 이유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 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는 이러한 몬순기에 비바람을 피하려는 선박들이 몰려들어 해상교류가 활발했다.
이 말레이 반도 아래 말라카 해협은 아라비아와 인도 상인들, 중국과 기타 아시아 상인들의 중요한 해상통로였다.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지역으로 무역을 하려는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전세계 상인들은 말라카 지역에 화물을 보관했다가 상거래를 하였으며, 도·소매가 번성하자 자연 생성된 시장을 통해 가격의 표준화와 거래조건 등이 규정됐다.
수마트라, 자바, 말레이시아 동쪽해안, 중국 등 서쪽에서부터 들어오는 화물에는 입항세로 화물가격의 6%를, 국내상인들에게는 3%를 부과했다.
입항료는 독립적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입회 하에 입항화물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했는데, 이들은 4명으로써 구제라티스, 페구아와 파사이, 자바 등 인도지역 출신과 중국상인 등으로 구성되어 객관적으로 운영됐다. 1500년 무렵 말라카는 근처 가장 강력한 왕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자금이 많아지자 당시 술탄(왕)이었던 툰 무타히르의 부패가 커지면서 정국은 흔들렸고, 결국 1511년 포르투갈은 이 지역의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천명의 병사를 내세워 말라카를 점령하고 입항세를 차지하게 된다.
6%였던 외국선박들의 입항세를 12%로 늘렸으며, 관세 외에도 포르투갈 관리를 위한 선물도 준비해야 했다.
그러자 포르투갈 관리들의 뇌물과 부패는 눈덩이 처럼 커졌으며, 모든 관리가 사리사욕을 채우느라 포르투갈 왕에게는 상납할 것도 없어졌다.
계속되는 포르투갈인들의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부패 때문에 아시아와 이슬람 상인들은 말라카를 떠나 수마트라 지역 아체, 파사이, 페디르항으로 거래장소를 옮기게 되고, 말라카지역에서는 계속적으로 반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얼마 후 1547년 경쟁무역항을 가진 아체인들이 다시 말라카 요새를 침입했으며, 1637년에는 네덜란드가 조호르와 연합해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말라카를 지배했다.
말레이시아는 2차 세계대전까지 네덜란드에 이어 영국의 지배, 그리고 일본의 지배까지 받아가며 끝도 없는 침입을 당해왔다.
이 안타까운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부패한 왕과 함께 입항세라는 관세가 불러온 비극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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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역사속세금이야기'(저자 문점식, 2007. 4. 5)의 내용을 발췌해 엮은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세무사신문 제471호(2007.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