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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왜 검은옷을 입게 되었을까
[연합뉴스 2008-2-12]

 

지난해 미니멀리즘의 한 가운데서 패션계를 휩쓸었던 '블랙'은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최신 유행과 세련됨의 상징이 됐다. 죽음과 우울을 상징하던 검은색이 지위와 권력의 상징을 거쳐 첨단 유행이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케임브리지 대학의 영문과 교수인 존 하비가 '색깔도 빛도 없는 색'인 검은색의 역사와 문화를 풀어 낸 '블랙 패션의 문화사(Men in Black)'(심산 펴냄)는 '검은 남성복'에 주목한다.

검은색은 슬픔과 상실, 굴욕, 죄책감, 수치를 상징했지만 권력과 지위를 가진 남성들이 검은색 옷을 입으면서, 검은색은 남성들이 지닌 지위와 돈, 전문지식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영국과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의 역사와 당시의 미술 작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검은색 옷을 사례로 들며 검은색의 상징과 의미의 변화가 어떻게 다양하게 이뤄졌는지 설명한다.

검은색에 권력이 부여된 것은 몇몇 군주들에 의해서다. 성직자나 조문객이 입었던 검정색 옷은 15세기 초까지 궁정에서는 거의 입지 않았다.

하지만 부르고뉴의 군주인 필리프가 1419년 프랑스군에 살해된 아버지를 애도하기 위해 입기 시작하면서 검은색 옷은 정치적 권력의 상징이 됐고, 부르고뉴의 권력이 최고점에 달한 15세기 중반에는 궁정과 귀족사회를 중심으로 검은 옷차림이 널리 퍼졌다.

이 '근엄한 옷'은 스페인의 왕위를 물려 받은 부르고뉴가의 카를 5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에 의해 스페인과 유럽 전체로 확산됐다.

19세기 산업화와 도시화 시대의 경제적인 지위도 검은색 남성 정장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에드가르 드가의 1872년 작품 '목화시장, 뉴올리언스'는 남성과 돈의 세계인 목화 시장에서 솜을 감정하고 사고 파는 모습을 한 눈에 보여준다.

눈부신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과 모자를 챙겨 입은 남성들은 솜을 들어보이며 여유있는 모습으로 값을 매기고 거래를 하지만, 밝은 재킷을 입은 남자는 목화 재배자인듯 솜에 얼마의 가격이 매겨질지 근심스런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이 그림에서 검은색은 그들이 사장이나 고용인이라는 신분을 반영하며 전문가의 냉담함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검은 남성복은 직업과 직업의 세계, 직업의 권위를 의미하기 때문에 '검은색은 남성, 밝은색은 여성'이라는 엄격한 대조가 자리잡은 것도 바로 상업과 산업이 발전한 이 시기라고 말한다.

현대에 와서도 검은색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차려입는 격식있는 연회복이나 정장으로 권력과 품위를 상징하는 지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 보다 다양한 의미로 분화되고 있다.

여성들은 더 이상 금욕적이지 않은 세련되고 아름다운 검은색 드레스를 차려입고, 1920-1930년대 미술 작품 속의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조직 안에서 얼이 빠진 남자로 비유되기도 하며, 이탈리아 파시스트 '검은 셔츠단'의 무모한 애국심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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