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민간기업의 경영기법 도입 바람이 불고 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의 대통령이 취임한 새 정부 출범 이후 철밥통으로 상징되는 정년보장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인사평가시스템이 검토되고 있고 하위직의 의사결정 과정 참여를 위한 민간기업의 회의방식 도입도 추진되고 있다.
또 민간기업처럼 정부의 생산 상품인 행정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고객인 국민에 맡기는 방식도 고려되고 있다.
◇ 철밥통 깨진다
11일 정부 부처들에 따르면 인사평가와 관련해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국세청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활력 곡선(vitality curve)이다.
GE의 활력 곡선은 조직원을 20%의 핵심정예, 70%의 중간층, 10%의 하위로 구분해 상위 20%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상을 해주면서 미래의 리더로 육성하지만 하위 10%에 대해서는 상시 정리하는 시스템이다.
국세청은 활력 곡선 시스템을 우선 고위공무원단을 대상으로 도입할 생각이고 정리의 방법도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의 특성상 재교육 등을 통한 업무 능력 업그레이드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능력이 없는 간부에 대한 불이익은 불가피하고 연속적으로 평가 등급이 낮은 간부에 대해서는 정년이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해 4월 3% 퇴출제를 도입했던 서울시처럼 근무태도가 좋지 않거나 업무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간부 등을 뽑아 교육과 재교육을 통해 구제하겠지만 그래도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해임 등의 조치를 내리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합리적인 실행 방안이 마련된다면 이러한 인사평가시스템이 다른 부처로 확산될 수도 있다. 재계 출신인 이윤호 장관이 취임한 지식경제부도 서열보다는 능력과 평판을 강조하는 체제로 바꿀 방침이다.
이 장관은 지난 3일 취임 간담회에서 "인사의 원칙은 적재적소, 공평인사, 성과주의, 능력주의이고 고시 기수와 연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못박았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통합한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재경부에서 도입한 국제통화기금(IMF)식 인사평가시스템(APR)을 확대, 적용하는 문제를 논의 중이다.
IMF 인사평가시스템은 상급자가 일방적으로 인사 평가를 내리는 게 아니라 상급자와 하급자가 협의 를 통해 연초에 업무목표를 설정하고 연말에 팀워크, 보고서 작성 능력, 보고서의 시한준수 정도, 관계기관 협의 및 조정능력 등을 평가해서 결과를 합의하는 시스템이다.
민간기업의 경영기법은 아니지만 상급자가 일방적으로 하던 인사평가에 하급자를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쇄신하겠다는 것이다.
◇ 하위직도 의사결정 참여
지시 위주였던 회의 방식도 하위직까지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바뀌고 경직됐던 조직문화도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GE식 타운미팅을 도입해 조직화합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GE의 타운미팅을 원용한 지식경제부 타운미팅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밝힌 이윤호 장관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GE가 의사결정에 적극 활용한 타운미팅은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100여명 이상까지 참가해 구성원 각자가 아이디어를 내놓은 뒤 최종 의사결정에 하부 조직원까지 모두 참여토록 하는 형식이다.
이미 타운미팅 방식의 회의인 타운홀 미팅을 6차례 개최한 국세청은 고위공무원단에 대한 성과평가시스템, 일 버리기 50% 운동 등을 마련했고 가시적인 성과도 얻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직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재경부가 조직문화 혁신 프로젝트인 'Mofe Way'를 수립하면서 휴렛팩커드(HP), GE, 도요타 등 선진 글로벌 기업들의 최신 기업문화와 혁신 경향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며 "기획예산처와 통합한 만큼 이 제도를 통합 기획재정부에 적용하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표적 정보기술(IT) 기업인 HP는 '회사가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구성원들은 훌륭히 일을 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상징되는 인본주의적 기업문화인 'HP Way'를 통해 세계적인 IT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 고객이 OK 할 때까지
행정 서비스의 쇄신도 예고되고 있다. 시민단체, 인터넷 여론 조사 등 행정 서비스에 대한 외부평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새 정부 들어서는 행정의 최종 고객인 국민의 평가로 정책 우선 순위를 결정하겠다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민간기업처럼 고객을 통한 성과 평가를 하고 고객의 만족도를 평가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조사.징수 등 업무 분야별, 세무관서별로 납세자 신뢰도를 매년 주기적으로 측정해 성과지표로 활용하고 혁신의 우선순위를 정할 계획이다.
납세자의 평가에 따라 세정의 혁신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의지로 자체적인 평가로 자화자찬하기보다는 고객이 만족할 수 있도록 세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 공무원들 잔뜩 긴장
공무원들은 회의 방식과 조직 문화의 변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성과 중심의 인사평가 제도의 변화에 대해서는 긴장하고 있다.
과천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다소 경직되고 형식적이었던 공무원들의 회의나 조직 문화에 유연하고 효율을 중시하는 민간기업의 기법이 가미되면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성과와 능력 위주로 인사평가를 하겠다는 원칙에 공감하고 이로 인해 긴장감도 형성될 것"이라면서도 "지원, 집행, 기획 등 각기 고유한 특성이 있는 공무원의 업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서열화 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