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재벌 규제인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면 투자에 쓰일 돈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출자에 쓰여 오히려 설비투자 활성화를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출총제 폐지는 앞으로 예정돼 있는 공기업 매각 시장에서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적어도 5대 재벌에 대해서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21일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 선진화를 위한 신정부의 정책과제 :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과 제안'을 주제로 열린 한국경제학회 정책세미나에 주제발표자로 나서 새 정부의 기업정책과 관련해 이렇게 조언했다.
최 교수는 우선 출총제가 투자를 저해한다는 재벌들의 논리와 관련해 "출총제가 시행된 1987년부터 외환위기 직후 자본개방이 이뤄지기까지 어느 재벌도 이 제도가 투자 방해 요인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이 기간 재벌들의 중복 과잉 투자가 심각한 경제 문제였다"며 주장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외국자본에 비해 역차별을 불러온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최 교수는 "자본개방 이전 이 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은 계열 기업을 계속 늘려나가면서 경영권을 확고하게 지켜 나갔다"면서 "자본개방 후 소버린이나 칼 아이칸 등과 같은 외국자본이 SK, KT&G 등의 경영권에 도전하자 이를 구실로 재벌들이 출총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영권 방어와 경영 안정은 별개의 개념"이라며 "경영권 방어는 재벌 총수의 개인 경영권을 회사돈으로 방어하는 것이고, 경영권 안정은 경영권의 주체가 누구든 경영권이 쉽게 휘둘리지 않도록 한다는 개념"이라며 "재벌 가족이 자기 경영권을 회사돈으로 방어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총촐제를 완화 내지 폐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출총제를 폐지하면 투자에 쓰일 돈이 출자에 쓰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물에 대한 투자는 감소할 수 있으며, 재벌이 마음만 먹으면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국내 어느 기업도 사들일 수 있어 경제력 집중 심화로 시장 기능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이런 우려를 염두에 둔다면 적어도 5대 재벌에게는 계속 출총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은행 기능까지 소수 대재벌에게 휘둘리면 경쟁은 형식화되고 시장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만큼 금산분리 역시 5대 재벌에게는 그 원칙이 지켜질 필요가 있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재벌에 은행을 주는 방식은 가장 쉬운 방식이면서 하책 중의 하책"이라며 "재벌이 아닌 국내자본으로 은행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방법, 특정 재벌에게 경영권이 귀속되지 않으면서 재벌 자본을 동원하는 방법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해 그는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해 민간 영역을 확대하는 것은 당연하며 민간부문의 확장은 공기업 민영화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데 에너지산업이 민영화가 필요한 대표적 영역"이라며 "발전회사는 매각하고 배전과 판매도 한국전력으로부터 분리ㆍ민영화시켜 에너지산업에도 경쟁과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