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방문의 의미
한국의 세무사제도와 중국의 세무사제도를 비교 연구하고 제도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한국세무사회와 중국의 세무자순협회는 몇 년 전부터 격년제로 상호 방문하여 오고 있다. 작년에는 중국측에서 한국을 방문하였기 때문에 금년에는 한국측에서 중국을 방문하는 해이다.
그래서 한국세무사회에서는 지난 9월 10일 임향순 회장을 비롯하여 상임이사 일행이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중국은 그 동안 사회주의체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세무사제도의 역사가 일천하다. 중국의 세무사제도는 1992년도에야 도입되기 시작하였으며 세무자순협회는 1996년도에 설립되어 그 역사가 짧기 때문에 우리가 배울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웃나라의 세무사제도가 잘 발전되고 융성해지면 나중에 주변국들의 세무사제도의 기반확충이 튼튼하게 되어 우리의 제도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장래의 포석을 기대하고, 새로 정착되어 가는 중국의 세무사제도에 대하여 건전한 발전과 미래지향적인 제도정착이 되도록 상호 정보교환과 문제점의 해소를 위하여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중국세무자순협회와의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 방문일정은 중국의 세무자순협회와 우리나라의 국세청격인 國家稅務總局을 먼저 방문하고, 베이징(北京)의 세무서 한 곳과 그리고 세무사사무실을 방문하여 상호관심사를 서로 비교검토하고 발전방향을 토론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공식일정이 끝나면 베이징(北京)시내와 시안(西安)을 관광하기로 하였다.
◇ 중국의 국세청과 세무자순협회의 방문
중국 도착 다음 날 아침 8시 정각에 대절된 버스를 타고 중국의 국세청인 國家稅務總局으로 출발하였다. 약 40분쯤 후에 베이징(北京) 시내에 있는 중국의 國家稅務總局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의 몇 십 배나 큰 나라인 중국의 國家稅務總局의 건물이 5층 정도로 외관상 별로 크지도 않고 우리가 탄 버스 한대가 들어가니 청사의 마당이 여유가 얼마 남지 않을 정도로 청사가 생각보다 아주 작아 전혀 권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청사 안에 들어가 보니 건물의 연면적은 상당히 컸으며 청사내부는 중국의 여타의 건물에 비교하여 자재 등이 상대적으로 아주 고급스럽고 깨끗하고 적막이 흐를 정도로 정숙하여 묵직한 분위기가 우리를 압도하였다.
회의 장소가 3층이라 회의 장소로 가면서 복도 양쪽으로 있는 사무실들을 아무리 보아도 무슨 무슨 과(課)니 무슨 국(局)이니 하는 팻말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호텔 같이 몇 호실이라는 표지만 달려 있을 뿐이었다.
또 한가지 다른 점은 우리나라는 지방세는 행자부에서 그 업무를 관장하는데 중국은 지방세부과징수 업무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하지만 그 정책수립 등 총괄업무는 국가세무총국에서 한다고 한다.
회의 장소에 들어 가보니 또 한번 놀라웠다. 정면 벽에 열열환영이라는 전체가 붉은 커다란 플래카드와 함께 책상에 꽃 장식을 화려하게 잘 해 놓았는데 우리나라와 같이 회장이 앉을 책상에만 해 놓은 것이 아니라 회의장내 전원의 책상에까지 화려하게 준비를 잘 해 잘 놓았다. 자기 집에 방문한 손님에게는 자기 마누라도 내줄 듯이 손님에게 잘한다는 중국 사람들의 특유의 풍습대로 방문자들을 최대한 환영한다는 뜻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었다.
중국은 아직 세무자순협회의 사무국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국세청 즉 國家稅務總局 청사 내에서 그 업무를 보고 있었으며 세무자순협회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도 國家稅務總局의 직원들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한국세무사회측과의 회의도 國家稅務總局과 세무자순협회와 합동으로 갖게 되었다.
이날 회의에는 國家稅務總局 국장을 대신하여 왕리(王力)라는 부국장(우리나라로 말하면 국세청 차장)으로 차관급이 王世宇정책법규실장을 대동하고 참석하였다. 세무자순협회에서는 리용뀌(李永貴) 회장과 부회장 및 임원들과 國家稅務總局의 세무자순협회 주관부서 책임자들이 참석하였다.
세무자순협회 李永貴 회장도 전임 國家稅務總局의 부국장이었다고 한다.
王 力 부국장은 인사말을 통해 중국의 세무사제도는 늦게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발맞추어 중국정부에서는 세무사제도 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중에 있으므로 세무사제도의 선진국인 한국이 중국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또 많이 도움을 주라는 부탁까지 하였다.
회의 중에 우리 일행은 주로 중국의 국세불복청구제도를 비롯하여 조세소송대리제도와 세무조사제도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하였다.
◇ 중국의 조세불복제도
중국의 조세불복절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랐다.
즉 조세불복방법은 1차적으로 처분청에 재심청구를 하고 다음에는 심사청구를 하고 그래도 인용이 안 되면 행정소송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다음 2가지가 우리와 판이하게 달랐다.
첫째, 우리나라는 1차적으로 이의신청은 당해 처분청에 내고 2차적인 불복은 국세청에 심사청구를 하거나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중국은 1차적인 재심청구도 당해 처분청에 내고 또 2차 불복인 심사청구도 당해 세무서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재심청구에 대한 처리는 당해 부과과에서 처리하고(5일 이내에 처리) 심사청구는 법규과에서 처리한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의 국세청(국가세무총국)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심사국(과)라는 기구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심사청구에 불복하면 곧 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도록 되어있으며 2심제로 되어 있다.
두 번째로 중국은 불복청구를 하려면 당해 고지세액을 먼저 전액 납부하든지 아니면 납세담보를 한 다음이라야 재심청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금 납부여부에 불구하고 조세불복을 할 수 있다고 하였던 바 그들은 오히려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중국의 조세소송대리제도에 대하여 질의한 바 중국에서는 세무사가 조세소송을 대리할 수 있다고 답변하였다. 우리는 아주 놀라고 흥분하여 그 근거법이 무엇이냐고 꼬치꼬치 따지고 물어보았다.
중국은 행정소송법상 그 소송대리는 변호사가 할 수 있지만 변호사 외에도 가족이나 친지 또는 그 분야의 전문가는 소송제기자인 원고가 법원에 신청만 하면 아무나 그 소송을 대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 법적 근거는 행정소송법 제29조와 제30조에 있다고 한다.
다만, 변호사는 소송에 관련된 모든 서류를 조사하고 열람할 수가 있지만 변호사외의 자가 소송을 대리할 때에는 국가기밀사항은 취급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심사청구에 관련된 서류 외에 세무서의 결정결의서류 등 부과근거서류를 보고자 한 경우에는 별도로 법원에 서류 징취 허가를 받아야 그러한 서류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법적으로 조세소송의 대리를 세무사가 수임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조세소송에 대한 대리는 변호사보다도 세무사가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법원의 소송대리에 대한 허가는 대리 위임장만 첨부하면 별 어려움 없이 쉽게 해준다고 하였다.
사실 우리는 중국의 세무사제도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세무사제도의 발전을 위하여 이런 저런 것들을 가르쳐 주려고 하였었는데 오히려 중국에서는 조세소송도 세무사가 대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오히려 중국의 제도를 들여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1년도의 조세소송 건수는 240건인데 구체적으로 세무사가 몇 건을 대리하였는지는 통계자료가 없다고 하였다.
◇ 베이징(北京)의 세무서 방문
國家稅務總局에서 9시부터 12까지 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점심식사는 국가세무총국의 직영식당에서 하고 베이징(北京)시내에 있는 세무서를 한군데 견학하기로 하였다. 우리를 안내한 곳은 베이징(北京)의 서성구세무서였다. 명칭은 "西城區國家稅務分局”이다. 그들은 세무서를 "國家稅務分局”이라고 하였다.
중국에서도 "稅務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稅務所”라는 것은 우리나라와는 의미가 아주 달리 세무서내의 업무를 보는 단위 즉 하나의 課나 調査班 정도의 단위를 "稅務所”라고 하였다.
우리가 방문한 "西城區國家稅務分局”은 베이징(北京) 시내에 있는 좀 큰 세무서인 것 같은데(베이징(北京)시 세수의 약 3분의 1정도를 차지한다고 함) 직원은 364명이며 18개 세무소(우리나라의 課)가 있다고 하였다. 각 사무실을 보여 주었는데 각 부서의 명칭을 國家稅務總局에서와 같이 소득세과니 부가가치세과니 하는 관장업무를 지칭하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제1세무소, 제2세무소라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무실은 경찰과 비슷한 정복을 착용하고 근무를 하고 있었고 어떤 부서는 일반복장을 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어 보니 납세자를 직접 상대하는 부서 즉, 업체에 나가 조사를 하는 직원들이나 민원실 직원들은 정복을 착용하고 대민 업무가 없는 부서는 일반복장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각 사무실은 우리나라보다 면적도 적고 인원수도 적었으며 주로 컴퓨터로 업무를 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사무실마다 책상위에 서류가 하나도 놓여 있지 않아 서류가 왜 없느냐고 물었더니 업무를 모두 컴퓨터로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나, 우리가 생각하기엔 우리가 방문하니까 일부러 서류들을 전부 치워놓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컴퓨터로 일을 하더라도 그렇게 서류가 하나도 없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西城區國家稅務分局"은 청사의 규모로 보나 직원들의 숫자로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지방청 정도의 규모였다. 그런데 그 세무서의 서장은 약 40대 초반 정도의 여자였는데 용모가 반듯하고 아주 미인이었다. 馬志雲이라는 그 여성세무서장은 이 세무서에만 23년 동안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세무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원들의 인사이동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세무서장은 인사위원회에서 선거로 선출한다고 하였다. 나중에 통역의 설명을 들으니 과장까지는 꼭 그렇지 않지만 공산당 핵심당원이 아니고서는 세무서장이 될 수가 없다고 하였다.
◇ 세무사사무실의 방문
마지막 방문일정으로 중국의 세무사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가 방문한 세무사사무실은 베이징(北京) 시내에 있는 세무법인의 사무소였다. 중국에서는 법인이 아니면 3명 이상의 합동사무소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는 순수한 개인 세무사사무실은 없다고 한다.
중국세무자순협회의 안내에 따라 간곳은 1999년도에 자본금 500만 위엔(元)으로 설립된 北京 永信和稅務師事務所有限責任公司 사무실이었다. 중국은 세무사 명칭을 쓸 때 선비사자(士)를 쓰지 않고 스승사자(師)를 사용한다.
馬黎君 사장으로부터 회사소개를 들었는데 이 회사는 직원이 72명이며 소속된 세무사의 숫자도 40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이 회사의 주요업무는 세무자문 및 기획, 세무변호사(조세소송대리를 비롯한 조세불복대리) 세무교육대리 납세행위판정, 경제활동체결(합작투자 등)자문 등의 업무를 취급하고 기장대리 업무는 한건도 안 한다고 하였다. 결국 이 세무법인은 일반적인 세무사사무소의 수준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김&장 법무법인 수준의 컨설팅업무를 주업으로 하고 있었다.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에서나 할 수 있는 일만을 주로 하고 있어 우리 일행은 공인회계사나 변호사와의 경쟁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하였던 바, 중국에서는 회계법인은 세무업무를 못하게 되어 있으며, 만약 회계법인이 세무대리를 하려면 5명 이상의 세무사가 있어야 하고 세무자순협회에 가입을 하고 비준을 받아야 세무대리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공인회계사들이 공인회계사도 세무대리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세무업무에 관해서는 세무사가 더 전문인이라는 인식이 잘되어 있기 때문에 회사나 납세자들이 실력 있는 세무사사무실을 찾기 때문에 회계법인과의 경쟁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중국은 세무사제도의 시작은 우리나라보다 늦었지만 세무사들의 지위나 여건 및 비즈니스의 질이 우리나라 보다 더 나은 것을 확인하고 수익성도 좋지 않은 기장대리에 전전 긍긍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세무사 업계의 실정을 생각하며 우리 일행은 내심 중국의 제도를 부러워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의 세무사제도가 중국보다 오래 되었기 때문에 중국에 뭔가 좀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중국이 조세소송대리도 할 수 있음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이나 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의 합작투자에 대한 계약체결업무를 비롯한 고급스런 컨설팅업무를 주요업무로 하고 있는 등 우리나라의 세무사들 보다 더 고차원적인 업무를 하고 있어 우리 일행은 우리가 중국에 배워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나라도 어떻게 하면 그런 업무를 세무사들이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 노력하여야겠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였다.
◇ 중국의 세무사시험 응시자격 요건
중국에서는 대학교를 졸업했더라도 곧 바로 세무사시험에 응시할 수 없고 경제, 법률분야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세무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제도가 있으면 경력요건 때문에 세무사사무실에 근무하려고 하는 직원들의 숫자가 많아질 것이므로 직원 구인난에 아주 곤욕을 치르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세무사업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거나 세무사사무실에 일정기간 근무한 직원들에 대하여는 1차시험 또는 일부분의 시험과목을 면제해 주는 등의 제도적인 장치가 된다면 직원 확충과 직원들의 사기 앙양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므로 이러한 제도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변화된 중국
공식일정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1천 1백여년간 13개 왕조가 숨쉬는 천년의 고도이며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는 실크로드의 출발지 시안(西安)으로 관광을 가게 되었다.
시안(西安)은 베이징(北京)에서 중국 민항기를 타고 약 1시간 반 정도 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그동안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이 중국의 비행기는 시간도 잘 지키지 않고 또 중국 민항기는 추락사고도 많다는 소문을 들어서인지 탑승할 때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14시 10분발 비행기는 생각과는 달리 정시에 탑승브릿지에서 출발하여 정상적으로 이륙하였다. 그래서 중국도 이제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시안(西安)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려서 짐을 찾는데 내 짐(큰 가방) 하나가 나오질 않는다. 일행의 짐을 다 찾고 짐 찾는 벨트가 정지할 때까지 기다려도 짐이 나오질 않는다.
할 수 없이 공항 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다른 일행이 가져 간지도 모른다고 하여 먼저 나간 한국 단체관광팀에 연락을 해도 잘 못 가져온 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베이징(北京) 공항에서 안 실은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 쪽으로 전화를 해 보니 짐표가 떨어져서 어디로 가야 할 짐인지를 몰라서 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단 짐을 찾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모든 여행용품이 그 가방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당장 써야할 물건들이 없으니 걱정이었다. 더더구나 공항 직원은 가능한 빨리 찾아 주겠다고는 하나 우리가 묵을 호텔이 시안(西安) 공항에서 1시간 반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 있기 때문에 베이징(北京)에서 다음 비행기로 보내준다고 하더라도 언제 호텔까지 가져다 줄 지가 의문이었다. 솔직히 중국의 시스템이 그렇게 잘되어 있지 않을 것 같아 미덥지가 않았지만 대책이 없어 할 수 없이 일행과 같이 시안(西安) 시내 호텔로 돌아 왔다.
그런데 단체로 시내 관광을 하고 10시 30분경에 호텔에 돌아와 보니 공항에서 짐 찾는 업무를 도와 주었던 그 여직원이 큰 가방을 갖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동안 중국에 대해서 들었던 안 좋은 이미지가 싹 가시었다. 솔직히 10여년 전에 외국에 갔다 오다가 우리나라의 K비행기를 타고 귀국할 때도 손가방 하나가 안나와 분실신고를 하였는데 한 달 만에야 찾았다고 전화가 왔다. 그것도 집으로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김포공항에 도착했으니 찾아가라고 연락이 와서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공항에 가서 찾아 온 경험이 있다.
그런데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중국이 당일 날 그 가방을 찾아서 공항에서 1시간 반이나 떨어져 있는 호텔까지 그 가방을 가져다 준 것을 보니 이제 중국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중국에 다녀와 보고 그 때의 중국만을 생각하여 우리와 경쟁이 안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였다가는 정말 큰 코 다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이징(北京) 시내는 물론 시안(西安) 시내의 모든 상황이나 발전상을 볼 때 머지않아 서울과 같아질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본 중국을 그대로 보지 말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중국을 정말로 다시 보고 충분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절실하다.
◇ 땅이 커서 대국?
중국은 땅 덩어리가 어마 어마하게 크다. 그래서 땅이 넓고 커 "대국"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땅덩어리가 커서 "대국”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의 생각이 커서 "대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 가본 사람들은 거의 다 그 어마어마한 만리장성과 자금성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은 시안(西安)에서 발견된 진시황의 묘를 지키는 병마용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들의 규모를 보면 한결같이 너무나 황당하리만큼 크고 어마어마하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진 그것을 볼 때는 막연히 그 규모가 대단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것을 만든 사람들의 머릿속은 쉽게 생각을 못한다.
처음에 그러한 것들을 만들려고 구상한 사람과 또 그런 대규모로 설계를 하고 실제로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머릿 속을 생각하면 너무나 스케일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설을 하려고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또 그 주위 사람들은 그런 구상에 동조를 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생각은 다 비슷하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결국 중국에는 그런 생각이 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지 어느 한 사람만의 구상이었다면 미친 사람으로 여기고 그런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 크고 스케일이 크지 않다면 목숨을 걸고 그 넓은 땅을 통일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들을 보면 중국 사람들은 스케일 자체가 크고 또 생각을 크게 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래서 중국을 "대국”이라고 하는 것이며 또 그런 사람들 때문에 중국은 "대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 351호 (2002.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