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통화.금융당국이 물가 안정을 위한 전방위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물가 급등세가 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5월 원재료 물가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79.8%나 폭등하며 28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5월 소비자물가는 7년 만에 최고치인 4.9%가 급등하는 등 물가 불안이 가중되면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4월 시중유동성 증가율이 8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14.9%를 나타내는 등 통화량마저 급증하면서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를 방치할 경우 국민의 실질 소득이 줄어들면서 내수 위축과 기업투자 감소, 일자리 축소, 소득 감소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게다가 경기가 하강하면서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커지자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
◇ 금리.지급준비율 인상 고민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지급준비율 인상, 총액한도대출 축소 등 다양한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물가 안정에 가장 강력한 수단은 금리 인상이다. 그러나 이는 가라앉는 경기를 더욱 찍어누르는 부정적인 효과가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점에서 부담스럽다.
그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방안이다. 2006년 11월에는 금리를 올리기에는 경기상황이 나쁘지만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꺾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준율을 올린 바 있다. 이 방안 역시 자금의 국제화 등으로 인해 통화량 통제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 효과가 과거처럼 크지 않은 데다 은행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비 은행권과의 형평성 문제를 일으킨다.
중소기업에 대한 총액한도대출을 축소하는 방안도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다. 일단, 더이상 줄일 여지가 크지 않다. 총액한도대출액은 9조6천억원에 이르렀으나 작년 1.4분기에 8조원으로 축소했고 6개월만인 3.4분기에 6조5천억원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6조5천억원 가운데 5조원은 지방 중소기업을 위한 것이어서 한은이 줄일 수 있는 금액은 나머지 1조5천억원 정도다. 1조5천억원 정도를 축소해봤자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 한은의 판단이다.
◇ 금통위, 어떤 방안 선택할까
금융통화위원회가 물가 안정을 위해 어떤 방안을 선택할지는 속단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한국은행이 다음달초에 발표하는 경기 전망이 중요하다. 중장기적인 경기와 물가 전망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기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면 금리 인상 카드를 빼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은 내부에서는 금리 인상이 더이상 '쓰기 어려운 카드'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경기가 예상보다 훨씬 불안할 것으로 전망된다면 지준율 인상을 선택할 수 있다. 부작용이 있으나 경기상황을 감안하면서도 물가 불안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총액한도대출 축소는 검토 대상에 들어가 있지만 비중있게 다뤄지는 분위기는 아니다.
총액한도는 정책금융 축소라는 원칙에 따라 줄여나갈 수 있으나 유동성 조절 수단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 여러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단계"라면서 "한은 집행부는 특정 방안을 정해놓고 검토하거나 추진하는 것은 아니며 최종 권한은 금통위가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임경묵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시중유동성과 물가가 연결되기 때문에 시중유동성을 줄이려만 정공법으로 금리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며 "작년말처럼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지준율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 대출경쟁 억제..유동성 흡수.부실 예방
올들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이 증가하고 있는 점도 시중유동성 증가의 원인으로 꼽힘에 따라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과잉 대출 경쟁의 자제를 지도하고 있다. 또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될 경우 대출 부실화로 은행 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이는 결국 금융시스템의 불안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작년 말 감소세를 보였던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올해 1월 7조8천억원, 2월 3조2천억원, 3월 4조2천억원, 4월 7조4천억원, 5월 5조8천억원을 기록했다. 또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1월 7천억원 감소했다가 2월 2조3천억원, 3월 2조4천억원, 4월 3조4천억원, 5월 2조8천억원 증가했다.
금융당국은 이에 따라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상승에 취약한 음식료 업종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의 부실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으며 기업.가계 대출에 대한 심사를 보다 철저히 할 것을 금융권에 주문하고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지난 20일 한 강연에서 "금융시장의 위험 요인이 증대하는 상황에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선임연구원은 "은행들의 과도한 대출 경쟁이 시중유동성 증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은행들이 조달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 있는 금리 결정 구조 때문에 대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연구원은 "이런 상황에서 한은의 금리통화 정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며 금융당국의 개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금융연구원 이규복 연구위원은 "대출에 과도한 부문이 있다면 대출 속도 조절 등의 감독을 할 수 있다"며 "다만 은행 대출이 시중유동성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전제가 있어야만 유동성 흡수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 가격담합 '철퇴', 제품공급 확대
정부는 물가 상승에 편승해 가격을 부당하게 올리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보고 감시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석유와 이동전화서비스, 사교육, 자동차, 의료 등 서민 생활과 직결된 5개 업종을 중점 감시 대상으로 정하고 가격 담합과 같은 불공정거래 여부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거나 벌일 예정이다.
공정위는 최근 라면 값과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의 담합 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공정위는 음식료와 의약품, 개인서비스 요금, 철강 등 품목에 가릴 것이 가격 인상이 확산됨에 따라 부당한 인상이 없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경제질서를 해치는 카르텔(담합), 독과점 남용 행위 등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히 감시하고 엄중 제재할 것"이라고 공언한데다 정부는 필요하면 세무조사도 병행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에 관련 법 위반업체에 대한 제재 수위가 어느 때보다 높을 전망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제품 공급 쪽의 비용 인상 요인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가공용 밀.옥수수 등 69개 품목의 관세를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없애고 휘발유와 등유, 경유, 중유 등 4개 석유제품의 관세를 3%에서 1%로 인하했다. 또 9월부터 한 주유소에서 여러 정유사의 제품을 섞어 파는 것을 허용한다. 경쟁을 촉진해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으로, 정부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직거래 확대와 농.수협의 유통 기능 활성화 등을 통해 가격을 낮춘다는 방침이다.
기획재정부 김범석 물가정책과장은 "물가 대책은 공급 비용을 낮추고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소비자정보 공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시장 수급 상황이 악화될 때마다 비철금속이나 농산물 비축 물량을 풀어 공급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