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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4071]
기고-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와 전적지 답사를 다녀와서

 

김복중 세무사

본회 업무정화조사위원

 

 

 

 

 

 

 

 

 

오랜 전부터 가보고 싶어 했던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내 주변의 동료나 지인들과 같이 휴가를 내어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지금까지 기회를 갖지 못해 아쉬워하던 차에 이순신 리더쉽 연구회(회장: 서강대 지용희 교수)에서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와 전적지를 답사한다는 통보가 왔다. 작년부터 이순신 장군의 리더쉽에 관해서 대학교수의 강의를 듣고 많은 토론은 했지만, 이렇게 현지 답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기쁘기 그지없었다. 또한 자주 가 보는 내 고향 통영이지만 그래도 다른 각도에서 통영을 느껴 볼 수 있다고 생각되어, 아내를 설득?하여 참가 신청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답사 여행에는 뜻있는 분들이 많이 참석했다. 연구회 멤버인 전직 대사 두 분과 방위산업체 대표를 비롯한 기업체 대표, 해군예비역장성, 공무원, 회사원, 대학생 등이 가족과 함께 참석했다. ‘이순신이 싸운 바다’의 저자인 이봉수 작가도 이번 여행에 동행했다.

서울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는 연두색 산하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시작 지점을 답사하기 위해 우리 일행은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에서 경남 산청군 단성면으로 빠져 나와 점심식사를 했다. 약초의 고장 산청에서 식당주인이 직접 채취했다는 산채나물을 먹으며 깊어 가는 봄의 향취를 맘껏 누릴 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단성면에서 맨 처음 들른 곳은 ‘박호원의 종의 집’ 이다.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망추정 입구에 있는 유적지로 백의종군 당시 이순신 장군이 하룻밤 자고 간 집이다. 세월이 흘러 주변에는 하천을 정비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지나갔던 제방길의 흔적은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정유재란 발발과 동시에 서울로 압송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장군은 구국의 일념으로 병사를 모으며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면서 백의종군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날 난중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정유 6월 초1일, 비가 계속 내렸다. 일찍 출발하여 청수역(淸水驛)시냇가 정자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였다. 저물 무렵 단성 땅과 진주 땅의 경계에 있는 박호원의 농사 짓는 종의 집에 투숙하려는데, 주인이 반갑게 접대하기는 하나 잠자는 방이 좋지 못하여 간신히 밤을 지냈다.”

산 하나를 넘어서니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 손경례의 집이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도중 선전관으로부터 이 집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한다는 선조의 교지를 받는다. 이미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완패하여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조선수군은 경상우수사 배설이 가지고 도망친 12척의 배만 남은 상태였다. 자신을 의심하여 사형선고 까지 내렸던 선조로부터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받는 장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백의종군로를 둘러보고 통영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세 시경. 한산도 제승당으로 가는 배는 한 시간 간격으로 있어 잠시 짬을 내어 여객선 터미널 뒷골목에서 통영막걸리를 시켰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잔씩 돌리고 나니 동양의 나폴리 통영의 오후는 더욱 느긋하게 다가왔다. 배가 한산도를 향하여 빠져 나가자 “이순신이 싸운 바다‘의 저자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 섬을 가리키며 학익진과 한산대첩을 설명한다. 대첩이 있기 하루 전에 이순신 장군에게 적의 동태를 알려준 이 고장의 민초였던 목동 김천손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제승당 수루를 둘러보고 이순신 장군의 영을 모신 충무사에 들러 일행은 참배를 했다. 지용희 교수가 방명록에 서명한 후 향을 피우자 나머지는 옷깃을 여미고 민족의 영웅 앞에 머리를 숙였다. 세월은 흘러 400년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장군의 숨결이 여기 충무사에 서려있다. 봉안된 영정을 바라보니 준엄한 눈빛과 태산 같은 기상이 넘쳐흐른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협곡을 사이에 두고 활을 쏘았던 한산정을 뒤로하고 수루에 올라 한산만을 바라보니 여기는 천혜의 비경이요 천연의 수군 요새다. 쪽빛 물결 너머로 한산만 입구의 거북등대와 한산대첩기념비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저녁 때 푸른 쪽빛바다와 올망졸망 섬들이 내려다보이는 충무관광호텔에서 세미나 겸 강연이 있었다. 지용희 교수가 이순신 리더십에 대해서 강의하고 많은 사람들이 토론에 참여한 형식인데, 자라나는 학생들이 소감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이순신 장군을 주제로 밤늦도록 정담을 펼치고 아련한 파도소리에 묻혀 남국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뜨니 시내가 번잡하다. 철인삼종경기(2008 통영트라이애슬론 대회)가 진행된다고 한다. 교통통제 때문에 예정보다 늦게 시내에 있는 충렬사를 참배했다. 충렬사는 이 충무공의 신위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으로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승전한 후 명나라 임금이 직접 보내왔다는 ‘명조팔사품’ 진품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다. 여기서도 방명록에 서명 분향하고 우리 모두는 이순신 장군 영전에 큰 절을 두 번씩 했다.

오후에는 진해에 있는 해군 기지를 답사할 예정이었는데, 우리 내외는 통영에 사는 친구 아들 결혼식에 참석키 위해서 전체 일행과 아쉬운 작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세무사로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이번 답사여행이 크나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또한 작금의 이 어려운 시기에 어떠한 악조건도 무릅쓰고 난국을 헤쳐나간 이순신 장군의 그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세무사신문 제487호(200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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