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의 대장정 끝에 타협 가능성이 점쳐졌던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결렬돼 다시 좌초 위기를 맞았다.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DDA 전체가 아니라 30여개국이 참가한 주요국 통상각료회의, 더 좁혀보면 7대 무역국 회의가 결렬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이들 국가가 DDA 협상의 핵심 당사자라는 점에서 DDA 전체가 파국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 타결 문턱서 좌초
지난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DDA 각료회의가 열리기 전만 하더라도 협상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새로운 농업 보조금을 통과시킨 미국으로서는 타협의 여지가 별로 없었고 개발도상국의 강경한 입장을 대변해온 인도가 물러설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러던 상황이 협상 시작 나흘만인 지난 25일 핵심 쟁점인 농업과 비농산물(NAMA) 분야의 자유화 세부원칙(modalities)에 주요국 대표들이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분위기는 낙관으로 반전했다.
그러나 세부원칙 합의시 남았던 잔여 쟁점들, 특히 농업관련 부분을 둘러싼 G7(7대 무역국)의 대립이 끝내 전체 협상의 발목을 잡았다. G7은 미국과 EU(유럽연합), 일본, 호주, 중국, 인도, 브라질이다.
우선 개도국이 농산물 긴급수입관세(SSM)를 발동하려면 수입물량 증가폭이 이전 3년간 평균물량의 40%를 넘어야 한다는 미국 등 선진국 주장과 이를 10% 이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인도의 주장이 접점을 찾지 못했다.
특정 산업의 개방을 놓고 진행되는 분야별 자유화 협상의 개도국 참여문제, 미국의 면화 보조금 삭감과 중국의 면화 수입관세 감축 면제문제 등도 끝내 합의에 실패하면서 DDA 협상은 다시 위기에 몰렸다.
◇ 협상중단 장기화 전망
주요국 협상 결렬이라는 상황을 맞은 DDA의 운명을 현재로서는 단언하기 힘들다. 다만 이번 협상이 의례적인 각료회의가 아니라 주요국의 정치 일정 등을 감안한 '최후의 대타협 시도'성격이 강했다는 점과 협상의 핵심인 G7의 절충실패 충격을 고려하면 곧바로 협상을 재개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체 DDA의 전망이 불투명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DDA 협상의 중단이 처음은 아니다. DDA는 이미 2006년 7월에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이듬해 1월까지 반년 가량 중단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협상이 중단될 경우 각국의 정치 일정상 뚜렷한 협상 추동력을 발견하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오는 11월에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고 더구나 자국 통상정책의 전면 재검토쪽으로 기울어있는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DDA 협상에서 미국의 최대 반대자인 인도는 내년 5월 이전에 총선이 있을 전망이다. 통상측면에서 자국의 이익에 매우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유럽 대통령'을 두려던 리스본조약의 좌초를 겪은 EU는 내년 9월이면 집행부가 전면 개편된다. 프랑스 출신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의 임기도 내년 9월까지다. 협상의 휴지기를 몇 달 거치면 협상 주역들이 임기 정리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라미 총장도 DDA 협상의 향후 전망에 대해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지금 미래를 너무 멀리 보는 것은 어렵고 회원국들이 정신을 차린 후 다시 협상할지 여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지가 좀 가라앉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한국, FTA 추진에 힘 실릴 듯
한국은 그간 대외통상에서 DDA로 대표되는 다자주의와 FTA(자유무역협정)으로 상징되는 양자주의 전략을 병행해왔다.
하지만 일단 DDA가 좌초 위기에 처하면서 다자주의보다 양자주의 쪽으로 통상 정책의 추가 기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 DDA 협상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G7과 같은 핵심 당사국도 아니다.
DDA가 답보 상태를 지속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동시 다발적 FTA 전략을 통해 칠레, 싱가포르, EFTA(유럽자유무역연합), 아세안, 미국과 협상을 타결했다.
외교통상부는 G7 협상 결렬이 발표된 뒤 "DDA 협상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우리로서는 DDA의 재개나 새로운 라운드의 출범을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통상교섭본부는 이번 제네바 각료회담의 합의안 처리방향을 놓고 WTO 회원국들이 의견수렴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하반기 EU와 인도, 캐나다와 FTA 타결시도에 나설 계획이다. 무역 시장을 확대하고 통상을 다변화하기 위해 FTA로 국제 통상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DDA가 좌초할 경우 우리의 공산품 시장 확대나 주요 무역시장 접근 개선에는 차질이 예상되지만 농업은 개방 '공포'에서 한 숨 돌릴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