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수 연합뉴스 기자
2008년 가을 한국에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름하여 ‘감세논쟁’이다. 원천징수당한 휑한 월급명세서를 받는 필자와 같은 근로소득자나 매년 ‘세금 해방일’을 계산해 발표하는 재계나 감세는 참 반가운 일일 것 같은데 이 일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국민은 국민들대로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논쟁의 서막을 연 정부는 “감세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상기시키며 5년간 소득세, 법인세 등 세금 23조원을 깎아주고 전 정권의 ‘대못’인 종합부동산세는 유명무실할 정도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그러자 야권은 이를 “‘강부자’만을 위한 감세”라고 맹비난하며 부가가치세를 30% 깎자는 역제안으로 맞서고 있다. 잘 들여다보면 감세론 대 증세론이 아니라 둘 다 감세론을 펼치면서 어느 세금을 깎는 게 좋은가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셈이다.
정책이란 모름지기 정확한 상황인식과 진단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현 상황은 어떤가. 세수 측면을 보면 지난해 15조원 가량 초과 세수가 발생했고 올해도 환급금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 돌려주고도 7조원선 초과세수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제대로만 거두면 현 세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감세론이 힘을 받는 대목이다.
그러면 올해 하반기 이후 재정수요 측면에서는 어떤가. 추세적으로 커지는 복지재정 문제는 차치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너져 내리는 내수를 지키려 정부가 대대적 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 한 축을 재정이 담당할 것임은 두 말할 필요없다.
만약 정부가 위기에 빠진 서구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재정을 적극 활용할 구상이라면 적자 재정을 감내할 것이고 중장기 재정 안정성을 위해서라면 재정지출을 늘리되 감세는 어느 정도 한계를 두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의 감세논쟁 구도는 방향이 한참 어긋났다. 단순히 감세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주장이나 감세는 무조건 ‘강부자’를 위한 보너스이므로 철회돼야 한다는 주장이나 ‘기본이 안된’ 이야기들이기는 마찬가지다.
거액의 초과세수가 나오고 있는데 복지 등을 위해 감세가 안된다는 주장은 자의적 세금징수를 막기 위해 근대 헌법이 조세법률주의를 규정한 근본 이유를 망각한 주장이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원칙하에 현 재정수요에 필요한 만큼만 세금을 거둬야 하는 것은 근대 민주국가의 재정원칙이다. 장기 재정수요에 대처하기 위한 재원확충은 새로운 정치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발생하는 초과세수를 내버려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종부세 완화에 따른 재산세 인상 가능성도 그렇다. 종부세 강화와 짝을 맞춘 재산세 인상 로드맵은 이미 전 정부에서 마련된 것인데 이제 와서 ‘서민에 재산세 폭탄’ 운운하는 주장은 정치적으로 의미 있을지 몰라도 근거가 박약하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식 감세론은 무조건 타당한가. 그렇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법인세나 상속세를 깎아봐야 투자도 고용도 별로 늘지 않는다는 것은 연구기관들의 실증 분석으로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오히려 감세를 신앙처럼 되뇌던 선진국의 몇몇 정부는 자국 국민들, 특히 미래세대에게 재정 파탄 외에 남긴 게 없음은 부인할 길이 없다. 이런 사실들을 못본채 “세금만 깎으면 경제가 산다”는 주장은 또 하나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008년 가을 지금 세계는 금융과 실물경기의 동반침체로 1929년 대공황 이후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암울한 상태에 빠져있다. 시급한 것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적극 재정을 펼칠 것인지, 재정이 이를 감당해낼 수 있는지를 살펴본 뒤 여기에 걸맞은 적정 감세의 선을 찾아 국민들에게 솔직히 알리는 것이다. 그 다음은 직접세 위주로 감세하면 과연 경제가 사는 것인지, 아니면 부가세를 깎을 경우 진짜 물가도 내리고 서민의 주머니는 채워지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위기에 대한 선제대응’을 요구받는 시점에 필요한 것은 냉철한 이성과 실천력이지 대자보식 말싸움이 아니다. 입씨름으로 날을 새는 동안 11년 전 한국을 휩쌌던 ‘유령’이 또다시 이 땅에 또아리를 틀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만 커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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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495호 (2008.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