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도 비상이다. 연일 고시환율 집계 이후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중간재를 많이 수입하는 한국 경제의 대일 무역 적자를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원.엔 환율이 낮을 때 엔화 대출을 끌어다 쓴 기업은 환율 상승으로 원금이 두 배 가까이 뛰면서 이자 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 연일 사상 최고치 쓰는 원.엔 환율
24일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오후 3시 기준 전날보다 100엔당 6.14원 오른 1,581.98원을 기록했다. 원.엔 환율은 1991년 고시환율 집계 이후 최고 수준으로 1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꾸준히 오르던 원.엔 환율에 불을 댕긴 것은 미국발(發) 금융위기였다.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불리던 미국은 물론 유럽까지 흔들리면서 상대적으로 탄탄한 일본 경제가 주목받았고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래서 달러화가 다른 모든 통화에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엔화는 유일하게 달러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유지하던 유럽마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시작돼 엔화 가치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저금리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의 통화나 채권.주식 등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금리 인하로 매력을 상실하면서 이를 되갚겠다며 엔화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연구원은 "엔화 강세의 원인은 주로 엔케리 트레이드 청산 때문으로 엔케리 트레이드의 이유는 금리 인하에 따른 금리차 축소로 위험자산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엔화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과도한 고공 행진을 계속하자 주요 7개국(G7)도 이례적으로 엔화 폭등을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서기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대일 무역역조 심화..엔 대출기업 허리 휜다
가장 큰 문제는 대일 무역 적자의 악화다. 통상 엔화 강세(엔고)는 수출 시장에서 일본 제품 대비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키워줘 긍정적 요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지금 같은 전 세계적 경기 침체 상황에선 수출 증대 효과는 크지 않은 대신 일본산 원자재나 중간재의 수입 비용을 끌어올려 일본과의 무역 역조를 심화시킨다.
핵심 부품이나 소재를 일본에서 사들인 뒤 이를 재가공해 내다파는 한국 경제의 취약한 구조 탓에 생기는 문제다.
실제 관세청이 발표한 '10월 수출입 동향 확정치'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우리나라의 대(對) 일본 무역적자는 289억8천500만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대일 수출액은 242억2천600만달러에 그쳤다. 무역적자 규모가 수출 총액마저 뛰어넘는 수준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매출보다 더 큰 규모의 적자를 본 셈이다.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2006년 254억달러에서 지난해 299억달러로 늘어났고 올해엔 300억달러를 크게 웃돌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엔화대출을 받은 이들도 엔화 초강세로 큰 손실을 입은 상태다.
박 연구원은 "엔화강세로 인한 문제점은 한국이 엔화 관련 대출이 많다는 것"이라며 "작년 3분기만 해도 100엔당 750원하던 엔.원 환율이 100엔당 1천500원이 넘어 엔화대출 받은 사람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3분기에 100엔을 대출 받아 원화로 환전한 기업이나 투자자는 당시 환율 기준으로 보면 200엔을 갚아야하는 셈이다.
◇원화가치 제고 노력 필요
엔화가치 급등으로 한국경제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지만 정부가 당장 내놓을 수 있는 뚜렷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다.
원.엔 환율은 엔.달러 및 원.달러 환율에 연동돼 움직이는 구조로 원.달러 환율은 오르고 엔.달러 환율은 내려 원.엔 환율의 상승을 가속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박형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엔캐리 트레이드 축소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금융불안의 완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의 박 연구원은 "지금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국제 금융위기로부터 촉발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구제금융 처리에 신속성을 기해 글로벌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며 한중일 통화스와프를 통한 시장안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원화강세를 유도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한국경제의 달러 창출능력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우리투자증권의 박 연구원은 "한국의 올해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수준에 불과한데도 GDP 3~4% 수준의 적자를 내는 나라에 비해 통화가치 하락폭이 더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한국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박 연구원도 "원화자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한국의 신뢰도를 높여 엔화 자산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