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종 철
오마이뉴스 기자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다. 외국계 유명 IT회사에 다녔던 그 였다. 그의 옆구리엔 두툼한 서류봉투가 끼워져 있었다. 언뜻 보기에 각종 프랜차이즈 사업 설명자료 같아 보였다.
‘나중에 다시 보자'는 친구의 말과 함께 곧바로 헤어졌고, 후에 그의 실직 사실을 전해들었다.
한달전에 미국 본사로부터 갑작스런 한국지사 축소 통보 방침이 내려왔고, 직원의 절반가량이 해고통보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굳이 친구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선 기업 해고와 실업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작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이미 전 세계를 공황상태로 몰아넣고 있고, 모든 경제에 예외없이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경제위기 상태다. 경제성장은 작년 말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올해도 이같은 마이너스 성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스스로도 뒤늦게 인정했다. 이제 위기는 고통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실물경제 침체가 본격화되면서, 기업 퇴출과 도산 등 구조조정도 이어질 것이다.
물론 해고와 실업이 뒤따른다. 여성과 비정규직, 중소기업 등이 먼저 고통을 맞는다. 빈곤층과 서민 가계에 직격탄이 될 것이고, 신용불량자와 개인파산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특히 하위계층의 경우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실제 정부지원을 한푼도 받지 못하는 신빈곤층이 300만명을 넘어선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고통이 얼마나 오래동안 갈 것이냐다. 솔직히 내로라는 경제전문가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다만 정부와 경제주체들이 어떤 마음가짐과 대책을 펴느냐에 따라 고통의 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조조정이란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이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비관적인 생각보단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먼저 갖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윤증현 2기 경제팀은 강만수 전 장관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윤 장관이 뒤늦게 정부의 시장 신뢰 회복과 정직을 화두로 꺼냈지만, 두고 볼일이다. 이와 함께 정부 차원의 과감한 복지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안전망 확충 이상이다.
과거 1930년대 대공황시기에 선진국들은 국민들을 위해 과감한 복지 정책을 추진했다.
이유는 뻔하다. 대공황이 낳은 대량 실업과 이에 따른 삶의 파괴가 곧 국가 자체의 존망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이후 적극적으로 복지국가로 전환을 추진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공적자금 150조원을 쏟아 넣었지만, 복지의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양극화 역시 해소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최근 3∼4년 사이 경제가 좋았다고 하지만, 이들 서민계층엔 별다른 도움이 되질 못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노동시장의 유연성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이 우선적으로 확보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북유럽 복지국가인 스웨덴이 해고의 자유 등 노동시장 유연성이 가장 높은 이유도 실업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교육 등 각종 지원과 대책이 확실히 마련돼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두번째는 현재 진행중인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보다 치밀하고, 투명하게 해야 한다.
특히 금융 시스템에 대한 개혁은 절실하다. 지난 외환위기이후에도 금융개혁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후 카드사태나 부동산 거품을 키웠다.
게다가 최근 들어 미국과 영국 등은 금융위기에 대한 교훈으로, 금융시장에 대한 각종 규제와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금융 규제를 풀고 있다. 어찌보면 세계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 역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세번째는 위기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정말 줄여야 한다.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에너지 자원, 무역과 금융, 제조업 등 아직까지도 대외의존도가 너무 심하다. 이런 경제구조 아래에선 다른 나라보다 경제위기의 충격이 심할 수밖에 없다.
이를 줄이기 위해선 길게 볼 수밖에 없다. 식량 자급도를 높이고,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고,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내수시장의 비중도 높이고, 이를 통한 경제성장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게 쉽지 않다. 또 여전히 ‘감세와 규제완화'라는 경제정책 기조를 신봉(?)하고 있는 현 정부 아래에선 더 어려울지 모른다.
정부는 이번 위기를 잘 견뎌내면 향후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렇게 됐으면 한다. 하지만 현재 진행중인 정부의 정책들을 보면, 이런 기대와 희망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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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502호(2009.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