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러더스 파산에 따른 세계적 금융위기 여파로 작년 4분기 실적 부진에 시달렸던 주요 시중은행과 금융지주회사들이 올해 1분기에도 부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은행이 1분기에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은행들은 실적 둔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산 매각을 통한 수익 확보와 비용 줄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수익성과 건전성이 동시에 악화될 가능성이 있어 자본확충과 부실채권 처리에 대한 지원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 은행 대부분 1분기 적자 전망
29일 금융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기업 부실 확대와 구조조정에 따른 퇴직자들의 인건비 증가, 금리 급락에 따른 이자마진 감소 등으로 1분기에 흑자를 기록하는 은행은 극히 드물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하반기 고금리 후순위채와 정기예금 판매 경쟁으로 조달금리가 5%대 후반대로 올랐지만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시중금리 급락으로 이보다 낮아지면서 역마진이 나고 있다.
연체율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 대출과 가계 대출의 만기연장으로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도 커지고 있으며 펀드나 방카슈랑스 등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 수입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작년 4분기 순익을 냈던 시중은행 관계자는 "작년 12월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부실이 올 1, 2월까지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충당금 적립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며 "1분기에 상여금 지급이 몰려 있는 데다 희망퇴직 등으로 일시에 퇴직금이 지급되면서 인건비 지출도 급증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영증권이 하나지주와 우리금융에 대해 1분기에 각각 1천277억원과 107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증권업계에서는 구체적인 적자 규모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HMC투자증권 구경회 애널리스트는 "은행들이 부실 자산 증가로 충당금을 적립해야 하기 때문에 은행권 순익이 작년 1분기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이달말 환율이 1,350원을 기록하면 하나은행은 적자와 흑자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이며 우리금융도 부실 자산 때문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 수익 확보에 비용 축소 박차
1분기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은행들은 자산 매각 등 수익성 개선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들어 현대건설 지분 182만5천주와 현대상사 지분 22만5천주를 매각해 967억여원을 확보했으며 현대건설과 현대상사 지분 중 매각제한 해제분 약 234만2천주와 198만3천주도 매각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56억원어치인 골프장 회원권의 매각을 진행하고 있으며 2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전산센터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은행은 비싼 보증금과 임대료 등 경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달말 인천공항지점 내 지점 1곳과 6개 환전소를 철수시킬 예정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무수익성 자산과 매각제한이 해제된 지분을 모두 팔 생각"이라며 "이익 실현분을 다른 곳에 운용해 수익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은행도 이달 현대상사 지분 약 26만주를 매각해 50억원을 회수했다.
외환은행은 1분기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비용감소와 업무 효율성 개선을 위해 올 초부터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임직원의 사용하지 않는 여신과 카드 한도를 줄이고 있으며 미사용 계좌의 정리를 통해 전산데이터 양을 줄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캠코에 부실채권 약 1천300억원을 매각할 예정이며 기업은행은 지난달 자산유동화증권(ABS) 2천534억원을 발행해 부실자산을 매각했다.
◇ "은행 자본수혈, 선택 아닌 필수"
정부는 은행들의 수익성과 건전성 악화에 대비해 자본확충펀드와 구조조정기금, 금융안정기금 등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다.
정부는 이달 안에 자본확충펀드에 한도배정을 신청한 14개 은행 중 국민.하나.우리.농협.수협에 4조3천억 원 규모로 자본수혈을 단행할 예정이며 내달 초에는 신한 등 나머지 은행에도 자본확충을 실시할 계획이다.
총 20조 원 한도인 자본확충펀드로는 안심하지 못한 정부는 사실상 공적자금인 금융안정기금 조성계획을 발표하는 등 은행 자본수혈을 위한 후방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은행권의 부실채권 처리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다음 달부터 은행들은 3조 원 규모의 민간 배드뱅크를 설립해 자체적으로 부실채권을 처리하며 5월에는 자산관리공사 내에 총 40조 원 한도인 구조조정기금이 조성돼 금융권 부실채권을 매입한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수익성과 건전성이 동시에 악화되는 상황에서 자본확충 및 부실채권 처리 지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병건 신영증권 금융팀장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 건전성 악화에 대비한 은행의 위험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정부도 금융회사 건전성 제고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자본확충펀드 운영과 구조조정기금 설치 등을 감안할 때 은행의 자본적정성과 건전성이 극단적으로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자본확충펀드 등 지금과 같은 방식의 선제적인 자본확충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며 "다만 은행의 신청에 기반한 자본수혈이 아닌 강제적인 공적자금 투입은 아직 불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