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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2901]
[국세청기자실] 예방주사식 처방만으론 한국경제 미래 없다

  

         나지홍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표현대로 ‘100년만에 한번 올까 말까한’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맞아 미국·EU·일본 등 세계 각국은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해 부실 금융기관 구제와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한국 정부도 30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것을 비롯, ‘40조원+α’의 공적자금 조성이나 중소기업 대출 전액 만기연장 등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비상 경제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긴밀한 정책공조를 통해 당면한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려는 노력에 우리나라가 동참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너무 높아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세계경기 변동에 민감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경기 침체라는 독감 바이러스가 한국 경제를 휩쓸기 전에 미리 면역력을 높일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의 면면을 보면 위기를 극복할 근본적 대책보다는 일시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임시방책 일변도로 치우쳤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병원 처방에 비교하면 수술이나 식이요법, 운동 등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기보다는 예방주사나 진통제에 의존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10년 넘은 자동차 바꿀때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세금감면을 통해 신차(新車) 수요를 진작시켜 자동차업계를 지원한다는게 정부의 의도지만, 고환율과 저금리 특수에 편승해 자구노력을 소홀히 하는 자동차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묵인해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 전액 만기연장도 마찬가지다. 국내 중소기업 중에는 영업이익으로 금융이자도 못갚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많은데, 대출을 전액 만기연장해주면 도태돼야할 기업이 수명을 1년 더 연장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다행히 대출지원을 통해 좀비기업이 정상기업으로 회생한다면야 더할 나위없이 바람직하겠지만, 근근히 목숨만 연장할 경우 출혈경쟁을 일삼아 멀쩡한 다른 정상기업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게 문제다. 또 경기침체가 장기화돼 중소기업 만기연장이 줄줄이 부실로 연결될 경우, 은행 등 금융권이 나중에 감당해야할 부실규모는 지금의 몇배로 늘어날 수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는 고통분담이란 대의명분 때문에라도 거부하기 힘들다. 하지만 기업이 일자리 나누기 때문에 감원과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칠 경우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미국 대공황이 발생한 1930년대에 후버 대통령과 재계 지도자들이 만나 고용유지를 하기로 결의했었다. 하지만 불황이 장기화돼 못견디는 기업들이 속속 도산하면서 실업자가 양산돼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았던 경험이 있다.


물론 근본적인 처방을 미루는 정부의 논리에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 상황이 미국이나 유럽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정부가 부실화된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국유화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 은행 중 그 정도로 부실이 발생한 곳은 없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미국의 주택가격 버블이나 소비 버블이 국내에선 심각하지 않다. 한국의 경우 주택가격 버블은 노무현 정부의 초강력 부동산대책으로, 소비버블은 2003년 신용카드 사태로 어느 정도 진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설명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것은 이번 경제위기가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경제전문가들 중 연내 조기회복을 예상했던 낙관론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진지 오래고, 이제는 심지어 이번 위기가 10년 갈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의 기대대로 경제가 올 하반기에 회복된다면 수술보다는 예방주사로 대처하는 요법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반대로 경기침체가 길어진다고 가정하면 진통제로 시간을 끌기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는 것이 미래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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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505호(2009.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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