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며 '위기 해결사'로 부상한 한국은행의 위상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국회 기획재정위 경제재정소위는 21일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와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의결, 전체회의로 넘겼다.
오는 23일로 예정된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등 절차가 남아있지만 오랜 기간 논란을 지속했던 한은법 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다만, 금융감독원과 정무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상임위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어 막판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 韓銀 위상, 美 연준급 격상?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최종 통과될 경우 한국은행의 기능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위 소위가 의결한 한은법 개정안은 '물가안정'만을 규정한 한은법 1조 목적조항에 '금융안정'을 명시적으로 추가하는 게 핵심이다.
지난해 하반기 금융위기 이후 한은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금융안정 기능을 수행해왔지만 정작 한은법에는 물가안정만 목표로 설정돼 있다보니 최근과 같은 금융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데 제약이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책임'이 강화되는 것에 맞춰 '권한'도 주어진다.
한은이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이 현재의 은행권에서 비은행권으로 확대된다.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할 수 있는 직접조사권도 부여된다. 현재도 한은이 필요할 때 금융감독권에 공동검사를 요구할 수 있지만, 두 기관 간 '마찰'로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았다.
다만, 한은의 직접조사권은 금융통화정책 수행을 위해 긴급한 사정이 인정되는 때에만 사용하도록 제한을 뒀기 때문에 금감원의 감독권과는 엄연히 구별된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금융회사 설립 인허가권이나 비은행 금융회사 조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비교하기에는 무리이지만, 한은의 기능이 강화된다는 점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한은의 권한이 강화됐다는 것보다는 유사시에 대비할 수 있는 통화정책 수단이 다양해졌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며 "단독 조사권이 주어지더라도 중복감독, 감독의 이원화라는 시각보다는 기존 공동검사권이나 자료제출 요구권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정부 반발이 변수..최종 통과 낙관 일러
이번 법안이 기획재정위 소위를 통과했지만, 관련 부처들이 반발하고 있어 이 달 국회를 최종 통과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위는 22일 다시 회의를 열어 미진한 부분에 대해 협의를 한 뒤 23일 전체회의에서 합의내용을 보고한 후 법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그러나 서병수 기획재정위원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정부가 반대하고 있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여러가지 이견이 있어 조율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23일 전체회의에서 의결할지 말지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견을 조율하지 않으면 재정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이후 법사위 법안 심사 과정에서 또다시 논란이 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완강히 반대하는 점이 부담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감독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재편을 불러올 한은법 개정 추진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며 "통합 금융감독기구가 있는 국가에서 중앙은행에 단독 검사권을 부여한 사례는 없다"고 주장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이번 한은법 개정은 외환위기 직후 통합 감독기구가 출범한 취지를 퇴색시키는 것으로 법안대로라면 금융회사들의 검사 부담이 커질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한은이 금융안정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기존 법 체계 내에서도 수행할 수 있다"며 "한은법 개정은 좀 더 의견수렴을 거쳐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 관계자는 "아직 기획재정위 전체회의 과정이 남아있고 정무위원회가 강하게 반대하면 본회의 통과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제 한 고개를 넘은 셈"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