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동
경향신문 경제부 차장
“어제 점심시간에 OO세무서 재산세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양도소득세 신고하신 분의 분납기간이 돌아오니 체크해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요즘 사무실 공사준비로 스케줄을 파악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개업 10년 동안 이렇게 세금납부에 대해 세무서에서 체크한 적이 없었는데 내심 당황하기도 했지만 OO씨의 전화가 아니었으면 가산세 등 난처한 문제가 발생할 뻔 했습니다. 납세자를 위한 OO씨의 세심한 배려는 요즘 세무서에서 시행되고 있는 멘토제도의 조그마한 결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상냥한 목소리의 OO씨에 감사드립니다.”
국세청 홈페이지의 ‘고객의 소리’에 올라온 글 중 하나다. 관공서 홈페이지에 개설된 고객의 소리엔 대개는 불만의 글들이 적지 않다. 국민 전체가 민원인인 국세청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국세청을 출입하는 기자가 홈페이지의 고객의 소리를 살펴보는 이유는 국세청에 대한 비판의 글을 찾아내려는 데 있다. 뭔가 그럴듯한 사례가 공개글로 올라오면 취재해 비판기사를 쓰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가끔씩 올라오는 격려와 칭찬의 글을 보면(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에 기분이 나쁘진 않다.
‘친절한 국세청’이 되려는 노력의 하나로 국세청은 지난달부터 ‘세무상담 및 민원증명발급 예약제’를 시행하고 있다. 민원인들이 세무서를 방문해 장시간 대기하는 일이 없도록 방문예정 날짜와 시간, 상담내용 등을 홈페이지에 입력해 예약신청을 하면 약속을 잡아준다. 민원증명발급도 전화나 인터넷으로 사전예약한 뒤 오후 9시전까지 세무서를 찾아가면 민원증명을 발급해준다. 이쯤 되면 한껏 몸을 낮췄다고 해도 그리 과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느끼기엔 불편한 점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합소득세 신고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종소세 신고·납부 대상자가 된 기자들이 많았다. 기자들 중에서는 잡지 기고와 강연, 저술이나 번역 등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세청은 근로장려세제(EITC)의 확대시행 등에 대비, 기초소득 자료 수집을 위해 종소세 신고·납부 대상자수를 확대했고, 원천징수의무 사업자가 원고료 등을 기타소득이 아닌 사업소득으로 분류해 신고하면서 졸지에 종소세 신고대상자가 된 기자들이 적지 않았다.
한 후배기자도 원고료로 지난해 벌어들인 소득이 사업소득으로 잡히면서 종소세 신고안내문을 받았다. 국세청의 홈택스로 접속했지만 3시간 넘게 컴퓨터와 씨름하다 포기하고 말았다. 세법용어가 생소한 데다 홈택스에 자료를 입력하는 일이 까다롭기 그지 없었다.
명색이 국세청 출입인 기자도 약간의 사업소득을 신고하기 위해 홈택스에 도전했지만 결국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런 기사를 썼더니 국세청은 “그래도 인터넷으로 종합소득세 신고를 할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며 항변했다. 국세청의 항변에도 일리가 있지만 이왕 친절해지기로 맘먹었다면 적어도 홈택스에 떠있는 신고안내를 출력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좀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국세청을 출입한지 10개월여가 돼 가면서 적어도 일선 현장에서는 국세청이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국세청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크게 생각할 것없이 이유는 한가지, ‘윗물’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벼랑끝으로 몰고 간 표적 세무조사, 전 국세청장의 그림 뇌물상납 사건 등은 세무현장의 직원들의 기운를 빼앗고, 어깨를 축 처지게 하는 일들이다.
권력이 국세청을 권력행사의 수단으로 삼는 나쁜 관행이 단절되지 않는 이상 국세청 직원들은 앞으로도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 국세청을 비롯한 ‘4대 권력기관’을 내려 놓으려는 노력은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분위기다. 그 여파로 국세청은 설립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국세청의 윗물이 언제 맑아질 수 있을지 일선 직원들은 지켜보고 있다.
------------------------------------------------------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510호(2009.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