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준공공부문의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경련은 27일 동국대 곽채기 교수(행정학과)에 의뢰해 작성한 '우리나라 준공공부문의 실태 분석과 혁신 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불필요한 기능의 청산과 민영화 또는 민간 위탁, 유사 기능 통.폐합 등의 다각적인 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준공공기관이 정관상 설립 목적 사업을 확장하거나 출자회사 등을 마구 신설함에 따라 규모가 비대해졌으며, 이 때문에 기능이 중복되는 등 비효율성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방정부의 준공공부문은 기관의 수, 예산, 인력 등에 대한 실태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개혁의 필요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비대해진 준공공부문 =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말 현재 우리나라 281개(준정부기관 77개, 기타공공기관 204개) 중앙정부 준공공기관의 예산은 총 175조4천억원이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901조1천억원)의 19.5%, 중앙정부 일반회계예산(156조 5천억원)의 112.1%에 해당할 정도로 큰 규모다.
중앙정부 준공공기관 전체 종사자는 17만1천명으로 국가공무원(60만6천명)의 28.2%를 차지하며, 국가공기업 종사자(8만8천명)의 1.9배, 중앙정부 일반직 공무원(10만976명)의 1.7배 수준이다.
지방정부 준공공부문은 394개로 파악되고 있지만, 총괄적인 관리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통계가 없다.
지방정부 준공공부문(출자.출연기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조례에 의해 손쉽게 설립되며, 일부 기관은 아예 조례 규정도 없이 법인으로 설립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준공공부문은 정부(중앙정부+지방정부)로부터 일정한 업무를 위탁받거나 자금을 지원받아 비상업적인 공익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정의된다.
중앙정부 준공공부문은 주무 부처가 직접 설립해 사업 집행 업무를 하기 위한 준정부기관, 정부 출연 기관 등 국책연구소, 국립대학 부속병원, 공기업이 설립하는 자회사 등이 포함된다.
지방정부 준공공부문은 지방공기업법을 적용받지 않는 출자기관, 출연기관(사단.재단법인) 등이다.
◇왜 이렇게 커졌나 = 사업영역을 확장하려는 준공공기관과 산하기관 수를 늘리려는 주무부처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정관의 설립목적사업을 확대하고 출자회사를 신설함으로써 준공공부문의 규모가 커지는 계기가 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1998년 해외농업무역관을 7개로 대폭 정비했다가, 이후 수출 지원 기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해외무역센터를 12개로 확대하는 등 여러 준정부기관이 목적사업을 확장해 출자회사 등을 부풀렸다.
한국광해관리공단은 강원랜드 등 5개의 자회사를 설립했고, 코트라는 킨텍스 등 컨벤션 사업에 출자를 확대하는 등 다수의 준공공기관이 자회사와 출자회사 설립을 통해 민간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한국전기안전공사와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가스안전공사, 교통안전공단, 한국디자인진흥원, 한국가스기술공사 등이 운영하는 사업은 민간 부문과 경쟁하거나 중복되는 사례가 많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따라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자회사의 신규사업 진출 또는 자회사 등 기관 신설의 타당성을 사전에 제3의 기관에서 점검하는 '제3자 사전심사제도'를 도입해 객관적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문했다.
영국은 준공공부문 내지 비정부 준공공기관 설립 시 사전에 기능 중복성을 심사, 민간이 수행할 수 있으면 설립 승인을 내주지 않는 사례를 들었다.
우리도 2007년부터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지만, 공기업만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준공공부문에 대한 법적, 제도적 통제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준공공기관 설립을 위한 타당성 검토에서 결과가 부정적이면 정당화시킬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용역을 하는 관행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 준조세 축내는 공룡(?) = 보고서는 준공공기관의 규모가 커지면서 운영을 위한 재정 지원이 늘어났고, 이는 결국 국민 부담을 가중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 준공공부문에 대한 2007년 재정지원(출자, 출연, 보조금) 규모는 17조9천611억원으로 중앙정부 일반회계예산(156조 5천억원)의 11.5%를 차지했다.
또 중앙정부 준공공부문의 수입으로 법정부담금(2007년 14조3천650억원)중 5조6천691억원(전체 부담금의 39.5%)이 지원됐고, 사회보험료(2007년 44조9천099억원)도 준공공부문의 운영 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중앙정부 준공공부문의 재정수입을 위한 준조세 부담 규모는 총 50조5천790억원으로 2007년 국세부담액(161조 4천591억원)의 31.3%에 달할 정도다.
보고서는 국민의 준조세 부담을 줄이려면 준공공기관의 규모와 역할 확대를 통제하는 한편, 부담금의 설치 또는 존속 여부와 공공기관 운영을 연계시켜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지방 '충돌' 등 부작용 = 보고서는 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유사한 준공공기관을 별도로 설립함에 따라 중복투자로 가동률이 떨어지거나 주무부처별 준공공기관 운영으로 기능이 중복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고발했다.
예를 들어 지방상수도(지자체 담당)와 광역상수도(한국수자원공사 담당)의 시설 설치에 관한 정책조정이 미흡해 중복 투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 때문에 상수도시설의 평균가동률이 1995년 69.5%에서 2006년에는 50.8%로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또 관광 부문에서 국가적 차원의 한국관광공사가 있는데도 부산관광개발, 문경레저타운, 제주관관공사 등 지역 단위의 기관을 두는 것도 사례로 들었다.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준공공기관을 설립, 운영하면서 유사 기관이 넘쳐난 것도 개선점으로 꼽혔다.
실례로 경기도는 도내 균형 개발을 위해 1997년 광역개발공사를 설치했으나 용인.안산.남양주시 등 9개 지방자치단체가 별도의 개발공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개발공사 등 광역지자체의 토지.택지 개발을 위한 기관이 있는데도 기초지자체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중복의 부작용에 해당했다.
보고서는 2007년 결산대상 지방공기업(339개) 중 91개(26.8%)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사례를 예시, 지방정부 준공공부문의 기능 중복과 가동률 저하는 비효율적인 경영성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지방정부 준공공부문의 개혁시스템을 상시적으로 구축함과 동시에 중앙과 지방정부 간 준공공부문 사업 영역의 조정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코트라와 농수산물유통공사가 국내 기업의 수출 지원 기능을 이중으로 하고 있고, IT(정보통신)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지식경제부 산하의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과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한국게임산업진흥원의 업무도 중복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주무부처 간 또는 주무부처 내 기능 중복 사례는 주로 산업 진흥과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많이 발생했다.
◇어떤 개혁이 필요하나 =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로 필요성이 소멸했거나, 경쟁력이 없는 비핵심 기능이나 사업은 폐지 또는 청산해야 하는 것이 개혁의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또 민간부문과 경쟁하거나 민간부문이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경우에는 민영화 또는 민간위탁 등으로 돌리고, 정부 조직 또는 타 준공공기관과 중복되면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을 중심으로 통.폐합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보고서는 검사.검증 관련 준공공기관들의 업무는 민간 검사.검증기관과 경합하므로 가급적 민간에 이양하는 대신 관련 기술 개발과 보급, 사후 통제 활동에 역점을 두면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등 검사.검증기관형 준공공기관들의 업무와, 교통안전공단의 중고자동차에 대한 성능.상태 점검 업무는 각각 민간 검사.검증기관 및 정비업체들의 사업 영역과 경합하는 부분으로 지목됐다.
지경부, 문화부, 행정안전부 산하에 중복돼서 운영되고 있는 IT 및 디지털콘텐츠 분야의 사업은 통합해서 일원화하는 방안이 필요하고, 4대 보험을 관리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관리공단, 근로복지공단은 가칭 '사회보험청'으로 묶는 대안도 제시됐다.
지방정부 준공공부문의 개혁을 추진하려면 인력과 자산규모에 대한 자료 파악, 전반적인 관리체계 구축이 선결 과제라고 보고서는 제안했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 출자.출연기관을 통합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는 가칭 '지방정부 준공공기관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중앙과 지방정부 간 중복을 피하기 위해 사업 영역의 조정과 함께 상시적인 지방정부 준공공부문의 개혁시스템 구축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지방정부 준공공기관의 경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아웃소싱 등 자구 노력을 강화하는 한편 수지 균형 확보를 위한 요금 현실화와 수익자부담 원칙 등에 충실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