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세무서 뒷뜰에는 전신주를 벗삼아 외로이 서 있는 감나무 한그루가 가지마다 노랗게 물든 탐스런 감을 주렁주렁 매달아 내 방안 깊숙히 가을의 정취를 듬뿍 전해온다. 이 건물에 세들어 올때만 해도 이 감나무가 겨우 벽돌 담장만한 크기였는데 지금은 어느덧 건물 2층 높이까지 자랐다.
이미 장년 기에 접어들어 싱싱하고 탐스런 감을 생산하고 있는 이 감나무를 바라볼 때면 흘러간 20년 세월에 점철된 갖가지 사연들에 회한의 정을 느끼곤 한다. 흔이 감나무는 해걸이를 한다지만 이 감나무만은 매년 거르지 않고 가을의 미각을 돋우는가 하면 심미 적 감상의 상징물로 나와 맺어진 인연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수많은 나무들 중 감나무만은 느긋하게 잠에서 깨어나 5월도 한 참 지나서야 감꽃을 피운다. 넓은 잎사이로 열매가 뾰족 얼굴을 내미는가 싶더니 그만 영글어가면서 가을의 정경을 혼자 연출하는 이 감나무에 대하여 아낌없는 예찬을 펼쳐본다. 매일 감나무를 가까이에서 만나다보니 우리의 생활 곳곳에 미치 는 감나무와의 관계를 두루 살펴보게 되었다. 중세기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전환되기전 감은 식물질로서 유일 한 염색원료로 선택된 물감 중의 하나였다. 설익은 감을 따서 절구통에 찧어 생즙을 낸 후 가용량의 물과 혼 합하여 섬유질을 담그어 내면 다갈색으로 염색되었다. 이렇게 염색 된 섬유질은 오랫동안 퇴색되지 않고 손상이 없어 감은 이상적인 염료로 호평받아 왔다. 우리나라 재래토종감은 유난이 떫어 날감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다.
가난한 시절 감이 어느정도 영글었을 때 풋감을 따서 물에 담그어 2·3일정도 우려내면 떫은 맛이 달콤한 맛으로 변해 누구나 즐겨먹을 수 있었으며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 다. 그 외에도 감 가공식품으로 감짱아치나 감식초 등은 특히 호식가 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옛날 과일이 귀하고 저장관리가 어려웠던 시절 연시(홍시)는 희 소가치가 높아 상류층이나 사대부대가집에서 깊은 겨울철 주야간 간 식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옛날 선인들은 노랗게 익은 감 껍질을 벗겨 싸리가지에 10개씩 꿰 어 한접(100개)단위로 엮은 후 장대 끝에 매달아 하얀진이 피어나고 수분이 건조되어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말려서 곶감을 만들었다.
이렇 게 만들어진 곶감은 유명기호식품으로 자가용으로 쓰여지고 대부분 상품화하여 농가소득으로 효자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지금은 모두 기계화되어 지방에 따라 경제적 일익에 기여하기도 하 는 현실이다.
나아가 곶감을 주원료로 한 수정과는 우리나라 전통음 료로서 우리 다과문화의 맥을 굳건이 지켜온 산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남한 각처의 취락마을 집집마다 집주변에 감나무 없는 집이 거 의 없다. 빨갛게 물든 단풍잎 높은 가지위에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몇알의 감 에서 풍기는 전원생활의 정취를 畵人들의 붓끝으로 다듬어 화폭에 담 아낸 만추의 풍경은 한국화의 백미다. 누가 보아도 가슴설래임과 향수 에 젖어들게 하여 감나무에 대한 서정적 감정을 떨쳐 버릴 수 없을 것 이다. 해마다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가 영글어 사람의 손끝을 기다리 는 그 어느날 조용히 찾아든 秋色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빨간 단풍잎으 로 변해 한잎두잎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나는 망각의 눈으로 떠나 보낸다.
제 331호 (2001.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