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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근 세무사
〈隨 想〉중국여행기(상)

 

中國 桂林, 上海, 蘇州, 杭州를 관광하기 위하여 2000년 11월 2일 11시에 김포공항 제일청사에 집사람과 함께 갔다. 13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두시간만에 상해에 도착하였으나 시차 관계로 현지시간 14시 도착이었다.

공항에서 두시간 정도를 보내 고 나서 계림으로 중국 국내선을 타고 출발하였는데 국내에서 상 해로 가는 시간보다도 두시간 삼십여분을 더 날아갔다. 중국의 크기를 실감케 하는 시간이었다. 저녁식사 후 계림이 원조라는 발 마사지를 하였는데 마사지하 는 애들이 열대여섯 살 정도로 너무 어린데 조금은 놀랐고, 그 나이에 마사지 자격증을 따서 열심히 일하는 그들이 조금 안쓰러 운 것은 내 마음이 너무 사치스러워서인가?

 

그들이 우리말을 제 법 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무척 많이 다녀간 것 같다. 발 마사지는 그런대로 시원하게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았다. 첫 날은 발 마사지를 끝으로 계산 호텔에서 자는 것으로 일정이 끝 이었다. 이튿날은 중국 관광객이 많아 늦으면 복잡하다고 하여 5시에 출발, 초평에 7시 30분경에 도착하였다. 계산 관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이강 유람은 갈수기라 1시간가량 하였다. 계산 3만6천 이라는 봉우리를 쳐다보면서 정말로 자연의 경이를 생각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원래는 바다였으나 어떠한 연유로 융기하였으며 오랜 시간 침식을 하여 지금의 계림이 되었다고 하니 우리내 인 생을 그 긴 세월에 비긴다면 정말로 찰나에 왔다가 그대로 가는 게 아닐까?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桂林山水甲天下라 하여 계림의 산수를 제일로 친다는데 너무 기대를 갖고 가서 그런지 절묘한 느낌은 드나 미국의 그랜드캐넌 같은 웅장감이 없어서인지 모르나 내가 크게 기대했던 것에 비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림은 山靑, 水美, 洞奇, 石美의 네 가지 특징으로 상징되어 진다고 하는데 산이 푸르고, 물이 좋고, 동굴이 기이하며, 돌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동기 중 하나인 冠岩洞窟을 이강 유람 말미 에 관광하였다. 석회암 동굴인데 몇년 전에 발견되어 관광지로 개발된 것이 얼마 안 된다고 하였는데 개발자가 대만 사람이라 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언제 자유로이 남과 북이 투자도 하고 왕래도 하는 세상이 될까 생각하니 좀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관암동굴은 석회암동굴로 그 규모가 아주 컸다. 동굴 내에 설 치된 미니열차와 배를 타고 동굴 속을 이동하며 관광하는 코스인 데다 조명 또한 화려하여 동굴을 한층 더 신비롭게 보여 주고 있 었다. 오후에는 시내에 있는 伏波山을 등산하여 복파산 산정에서 계 림시내를 구경하고 내려온 후 옵션관광으로 계림 삼만육천봉 중 유일한 土山이라는 요산을 케이블카(스키장의 리프트)를 타고 올 라가 관광하였다. 요산에 올라보니 계림 山河를 내려다 볼 수 있 었는데 엎드린 봉우리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 정말 장관이었다.

 

이강에서 올려다보는 경치와는 완연히 다른 경치를 구경하였는데 과연 계림이 여성적인 산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요산 관 광은 우리가 마지막 팀이라 직원들이 우리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 며 눈치를 보고 있어서 빨리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케이 블카를 타고 내려오자마자 케이블카가 올 스톱하여 신기하게 생각 되었다. 삼일째는 기상 후 코끼리가 물을 먹는 형상이라는 象飛山을 구 경하고 중국 한방병원에 들러 특수기공사들이 220볼트의 전기 줄 을 직접 손에 잡고 하는 전기치료도 받고 약도 좀 구입하였다. 전 기치료를 받고 약을 먹어서인지 내 무릎이 훨씬 덜 아픈 것을 보 니 효과가 있기는 있는 것 같다. 옥 비취 전시장 계림박물관은 박 물관이라기 보다는 전통물품 판매장 수준이었다. 비행장으로 향하 던 중 점심을 먹고 상해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상해에 도착하여 1926년부터 1932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 사로 사용하였던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였다. 옛 날에 사용하 던 바로 그 집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집기가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되 도록이면 옛날대로 전시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임 시정부 청사가 대한민국의 것이 아니라 중국정부의 소유로 대한민 국 관광객에게서 관람료를 받아 중국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한국인입장에서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상해의 한식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라 좋을 줄 알았으나 이제까지 먹은 음식 중에서 최하의 음식이었다. 외국에서 한식음식점을 하려면 잘하고 맛있게 하면서 한국 단체관 광객만 받지 말고 현지인이나 외국인에게서도 인정받는 식당이었 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식사 후 중국인들이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지상에는 소주와 항 주가 있다는 지상천국이라는 蘇州와 杭州를 관광하기 위해서 蘇州 로 출발하였다.

 

4일째 소주에서의 첫 관광은 拙庭園이었다. 은퇴한 관리가 세웠 다는 졸정원은 북경의 이화원과 더불어 중국 4대 정원 중의 하나 라 한다. 한 사람의 힘으로 이러한 정원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자 체가 놀라웠다. 제주도 한림공원에 가서 송회장님을 뵈었을 때 “처음에 야자수 씨앗을 갖다가 직접 파종하면서 한림공원을 한 걸음 한 걸음 조성 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 사람이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졸정원에서도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유리가 거의 보석에 가까운 귀물이었는데 이탈리아 에서 유리까지 수입하여 유리창을 달았다 하니 얼마나 정성을 들 이고 돈도 많이 들인 일인가. 졸정원은 규모가 6천평으로 그리 크 지 않으나 정원 밖에 있는 탑까지도 설계에 이용하여 마치 큰 탑 이 경내에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는 등 절묘한 설계를 하였고 여러 가지 미술품과 수석들도 소장하고 있었다. 졸정원을 구경한 후 한산스님과 습득스님의 일화가 있는 한산스 님이 세웠다는 1400년 된 고찰인 寒山寺를 관광하였는데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이 절과 부처님을 부수려 할 때 훼손을 막기 위하여 부 처님 얼굴에 모택동 초상화를 그려 붙여서 막았다 한다. 대웅전 옆 에는 천년된 석탑이 두개 서 있었는데 문화혁명 때 홍위병이 도끼 질하여 부순 흔적이 여기 저기 남아있었다. 일부러 수리를 하지 않 고 후세에 교육용으로 남겨 놓았다 한다.

 

 

제 329호 (200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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