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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3057]
[국세청기자실] ‘조세전쟁’의 한 가운데서

          최 우 성
   한겨레신문 기자

 

몇 해 전 미국에서 <조세전쟁>이란 이름의 두툼한 책이 발간된 적이 있다. 일반 대중서라기보다는 역사 분야의 학술서적에 가까운 이 책은 1860년대 링컨 대통령 시대에서 1920년대 윌슨 대통령 시대에 이르기까지 60여 년간의 미국 역사를 다루고 있다. 얼핏 현대 미국사회의 현안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흘러간’ 이야기처럼 비칠지 모르나, 정작 이 시기는 오늘날 미국 사회를 특징짓는 기본구조가 형성된, 아주 중요한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 지은이가 이 중요한 시기를 <조세전쟁>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한 것은, 세정을 둘러싸고 당대에 벌어졌던 치열한 논쟁들이야말로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시금석 노릇을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공화당-민주당 두 거대정당의 기본 경제철학이나, 연방정부와 주정부, 의회 사이의 권력 분점 등 현대 미국사회의 기본 구조가 바로 ‘세금’이라는 주제를 놓고 벌인 당대의 논쟁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실제로, 한 사회가 굴러가는 기본 틀은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발딛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재정과 조세제도가 갖는 중요성은 훨씬 커지고 있다. 물론, 우리에겐 과거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정부가 일방적인 세정을 펴거나, 정권의 입맛대로 재정구조의 틀을 이리저리 흔들었던 아픈 경험도 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재정이나 조세는 다소 낡은 주제이거나, 일반인들의 일상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먼, ‘나랏님’들의 말싸움 소재 일 뿐이라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발전할수록 일상생활과 밀착된 정책들의 중요성이 커지는만큼,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세정’이 갖는 무게와 비중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날 게 틀림없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정치판을 휘젓는 거대 주제에서 차츰 벗어나 소득을 얻고, 번만큼 소비하며 또 얼마만큼의 세금을 내야하는 지의 문제로 옮겨가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조세제도와 세정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눈매를 치켜뜨는 건 물론이다.

 

이와 관련해, 결국 중요한 건 우리 사회의 세정 인프라가 얼마만큼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고 있느냐의 문제다. 세정 인프라란 국세청을 꼭짓점으로 한 세무당국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이 손쉽고 편리하게 세무와 관련된 절차를 밟아나갈 수 있는 각종 규정과 제도, 세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단체와 기관 등 모두를 아우르는 말일게다.

 

 단연, 변화의 첫 단추는 국세청에서부터 채워져야 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09년은 국세청 역사에서 두고두고 입에 오를 한 해인 게 분명하다. 조직을 이끄는 전임 청장들이 잇따른 비리 속에 불명예 퇴진한 가운데, 조직의 수장 자리가 6개월 가까이 비어있는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국세청 조직과는 거리가 먼, 민간 출신의 학자가 청장에 임명된 것도 여러 사람들에겐 놀라운 일로 비쳐지기도 했다. 과거가 남긴 상처와 잡음을 말끔히 제거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올 한 해 국세청이 나름대로 변화의 보습을 보여주느라 애를 쓴 건 신선한 충격이다. 조직의 규율을 바로잡거나, 일반 납세자의 권익과 직접 관련된 고위직엔, 외부 인사가 전격적으로 수혈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과 기업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세무조사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장치들을 도입하는 실험도 계속됐다. 세상은 내년에도 국세청의 이런 변화가 좀 더 분명한 흐름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세정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민간의 세정 서비스 기관과 주체들도 좀 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마인드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이젠 예전의 낡은 인연이나 관행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세무 서비스 수요자의 다양하고 수준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세상이다. 현대 사회에서 세정이 갖는 의미가 점차 커질수록, 이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도 덩달아 커지게 마련이다.

 

굳이 조세‘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들먹일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제는 ‘모든 일은 세금 문제로 통한다’는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진리 앞에 각자의 신발 끈을 새로이 고쳐 매야 할 때다.


세무사신문 제522호(2009.12.16)

 [조회: 3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