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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3310]
[국세청기자실] “풀어 놓고 관리하는 게 진짜 실력”

      

                김 영 훈

      중앙일보 경제부 기자

 

 

술은 오랫동안 적(敵)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애초 술은 ‘성스러운 물’이었다. 중세 포도주나 맥주의 주요 제조처는 수도원이었다. 그런데 술꾼이 늘자, 술은 규제의 대상이 됐다. 알코올 중독은 1849년부터 질병으로 분류됐다. 국가권력의 힘이 세지고 완고한 지도자가 나오면 규제의 강도는 더 커졌다.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1920년부터 14년간 미국에선 술을 만들지도 팔지도 못했다. 금주법은 1920년 실시돼 1933년까지 지속됐다. 금주법은 숱한 반작용을 낳았다. 합법이었던 교회의 성찬용 포도주는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 술 때문에 교회 가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치료 목적으로 처방하는 위스키도 급격히 늘었다. 이 정도는 애교다. 밀주는 지하경제를 주름잡았다. 위험이 따르는 사업이었기에 마피아가 장악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영조는 금주령을 어긴 신하를 처형하기도 했다. 목숨 내놓고 술 먹으라는 뜻이었다. 먼 옛날 얘기만은 아니다.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1985년 당 서기장 시절 금주 조치를 내렸다.


금주령까지는 아니어도 대부분의 국가는 술을 ‘나쁜 상품’으로 보고, 술에 대해선 더 많은 세금을 물렸다. 일종의 죄악세다. 이 덕에 일제시대엔 주세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이었다. 역설적으로 다른 어떤 세금보다 주세가 중요했다. 주세법이 10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술을 적으로 생각했는데, 어느새 전(錢)이었던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술 만드는 업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선 프랑스 와인 덕에 ‘술=나쁜 상품’이란 도식이 깨졌다. 책을 사서 보면서까지 와인 라벨 읽는 법을 익히고, 와인의 다양성에 놀라면서다. 포도주 한 병이 수백만원, 수천만원도 한다는 걸 알면서 술도 잘만 하면 돈이 되는 사업이란 걸 알게 됐다.


와인도 저절로 산업이 된 것은 아니다. 와인은 1855년부터 시작된 등급 제도가 발전의 발판이 됐다. 양조장마다 서로 ‘최고’라고 우기는 대신, 비교 평가를 통해 등급이 매겨졌다. 등급대로 값을 치르니 소비자는 안심했다. 여기에 이야기가 더해졌다. 루이 15세의 숨겨둔 여자가 즐겨 마셨다는 와인이라는 식의 얘기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됐다. 사람들은 술에 반하고, 이야기에 끌렸다. 와인만이 아니다. 러시아 보드카는 원소 주기율표를 만든 과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와 인연을 강조하곤 한다. 보드카의 공식적인 도수가 40도인 것은 그가 한 실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막걸리가 한국형 술 산업의 가능성을 보였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뽑은 히트상품 1위도 막걸리다. 스마트폰도, 김연아 선수도 막걸리가 제쳤다. 문제는 다시 규제다. 지난해 100년을 맞은 국세청 기술연구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술 들이 보관돼 있다. 원앙·림옥·용로·화심·충성…. 낯선 이름의 옛 소주를 보고 있자니, 그 많은 상표가 저마다 이야기를 가지고 승계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쌀로 술 빚는 걸 금지하면서, 소주 제조창을 통폐합하면서 한국 술은 이야기와 다양성을 잃어버렸다.


한식 세계화 바람을 타고 술에 대한 규제를 푼다고 한다. 풀 바엔 확실히 풀어야 한다.

 

‘납세필’도장이 찍힌 병마개를 생산하는 업체부터 늘려야 한다. 독과점은 또다른 문제를 부른다. 병마개 공장을 ‘국세청 산하기관’이라 부르는 것도 곱씹어 볼 대목이다. 막걸리에 과일을 넣으면 주세가 껑충 뛰고, 주정이나 생산 요건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주세법도 고쳐야 한다. 숨통을 너무 죄면 창의력이 발휘되기 어렵다.


이 참에 술 산업 육성책의 주무 부서도 확실하게 하는 게 좋다. 육성과 규제를 한꺼번에 하면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부실해지기 십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을 농림수산식품부 산하로 두는 것에 대해 반대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람이 마시는 것이니, 위생과 건강 문제는 확실하게 챙기고 나머지는 확 풀자. 탈루 가능성이 크다고 언제까지 꽁꽁 묶어둘 순 없다. 어디 술뿐이랴. 무릇 모든 세금은 해당 산업을 꽉 조이고 있으면 거두기 쉽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 사이 국세청도 전산화라는 큰 무기를 얻었다. 풀어 놓고서도 잘 관리하는 것, 그게 진짜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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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524호(20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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