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뒷돈을 요구했고, 일부 공무원은 향응 제공이 관행이라며 아무런 죄의식도 없더군요."
농기계 제조업자로부터 뇌물과 향응을 받은 전국 일선 자치단체 농업기술센터 농기계 구매 담당 공무원 80여명이 무더기로 충남 경찰에 입건되면서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지난 연말 홍성군청 공무원 108명이 연루된 '예산 빼돌리기' 사건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공무원이 대규모로 연루된 토착비리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행정 당국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20일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발표한 농기계 구매 담당 공무원 뇌물수수 사건에는 공무원들의 도덕 불감증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공무원들은 농기계 제조.판매업체로부터 농기계 구매대금의 5~10%를 사례비로 받았다.
또 여행경비와 룸살롱 접대, MP3플레이어 등 고가의 전자제품.등산복 등 취미용품 등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충남지역 모 자치단체 농업기술센터 직원 A씨(54)는 지난 2006년 몽골로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농기계 제조업체로부터 여행경비를 받아 썼고, 2008년과 2009년 우즈베키스탄으로 여행을 가면서도 여행비 일체를 농기계 업체 대표에게 부담시키는 등 모두 21차례에 걸쳐 2천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농기계 업체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을 직접 만나 현금이 든 봉투를 건네거나 계좌이체를 하는 방식으로 돈을 전달했으며, 담당 공무원의 모든 경조사를 챙겨야 했다.
공무원들은 조달청이 물품조달의 공정성을 위해 인터넷상에 구축해 놓은 '나라장터'에서 가격과 품질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에게 돈과 향응을 제공한 업체의 제품만을 구매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농업기술센터만 모두 66곳으로 서울과 대전, 부산, 광주를 제외한 충남과 경기 등 전국 일선 자치단체 농업기술센터에서 뇌물 수수가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나타났다.
양철민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은 "83명의 공무원 가운데 일부는 업체 관계자가 사 주는 밥을 한두번 먹었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며 "관행적으로 이뤄져 오던 것이 왜 범죄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국민의 세금으로 농기계를 구입할 때는 품질이나 가격을 보고 선택해야 하는데, 로비를 받다 보니 특정 업체의 물품만 사 왔다"며 "자치단체에서 벌인 감사 등에는 아무런 적발사항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연말 홍성군청 공무원 108명이 연루된 '예산 빼돌리기' 사건과 논산 수도사업소 공무원의 41억원 횡령 사건 이후 또다시 지역에서 불거져 나온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충남 참여자치연대 김지훈 집행위원장은 "일련의 공직비리 사건으로 충남 전체가 비리 온상처럼 비치고 있다"며 "공직자들의 자정노력뿐만 아니라 투명한 행정을 위해서는 행정감사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방안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충남도 관계자는 "공무원 개인과 업체 관계자와의 유착관계는 문서나 물증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서 행정감사로 밝힐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며 "일선 자치단체에서 불미스런 일이 잇따르고 있어서 당혹스럽지만 충남도가 '비리의 온상'처럼 비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일 농업기술센터 등에 근무하면서 농기계 제조업체로부터 뇌물과 해외여행경비, 향응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충남 모자치단체 농업기술센터 직원 A씨(54) 등 공무원 83명을 적발했으며, 이 가운데 A씨 등 5명에 대해 조만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또 이들에게 뇌물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뇌물공여 등)로 농기계 제조.판매업체 대표 B씨(46)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또 다른 업체 대표 C씨 등 농기계 제조.판매 업체 관계자 9명을 불구속입건할 예정이다.
이는 지금까지 경찰에 적발된 토착비리와 관련해 단일사안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