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중 국민일보 기자
백용호 국세청장은 1월 18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를 과세 사각지대에 있는 숨은 세원을 양성화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은 으레 이맘때면 청장들이 늘 하는 수사 정도로 생각했다. 본인도 그랬다.
그런데 백 청장은 기자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숨은 세원 양성화 원년’ 선포의 배경을 설명했다. 백 청장은 “왜 하필 올해를 숨은 세원 양성화의 원년으로 선포하느냐고 생각하실텐데 그동안 없었던 제도적인 인프라가 최근 많이 구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제도적인 인프라가 굉장히 많이 구축돼 (국세청이 확보한) 정보량이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서 탈세하면 잡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꼭 알려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국세청은 소득-지출 분석시스템, 법인정보 통합시스템, 국제거래세원 통합분석시스템 구축 등 새로운 과세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기존에 첩보를 입수, 세무조사를 통해 사후적으로 탈세를 잡아내는 게 국세청의 업무처리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시스템을 통해 탈세혐의자를 사전에 추출해 이들을 중심으로 기획 조사를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1월에 구축된 소득-지출 분석시스템이다. 종합소득세 신고자의 5년간 소비 지출액, 재산증가액을 소득금액과 비교해 탈루혐의자를 추출해낸다. 신고된 소득은 월급쟁이 수준인데 소비지출이 과도하거나 재산이 급격히 불어났다면 숨은 세원 관리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국세청은 해외증권 등 해외금융자산과 해외 소비 자료까지 포함되도록 시스템을 개선할 방침이다.
지난해 12월에 구축된 국제거래세원 통합분석시스템(ICAS)도 지능적인 탈세자들의 허를 찌를 수 있는 비밀병기다. ICAS는 해외 재산은닉, 역외소득 탈루혐의 정보를 분석하고 공격적 조세회피 행위에 대한 국제적 공조체제 구축으로 역외탈세혐의자를 적발하게 된다. 가령 국내 기업들이 해외 법인을 청산할 때 실제로는 돈이 남았으나 적자라고 허위 신고해 탈세한 뒤 해외에 재산을 숨겨둘 수 있다. 이 경우 현지에서는 반드시 금융기관이나 국세청에 소득이나 재산을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간 조세정보 교환을 통해 국세청에 정보가 입수되고 국내 모기업과의 연계 분석을 통해 탈세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역시 지난해 말에 구축된 자료상 조기경보시스템은 2011년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이 의무화되면 유통과정을 추적 조사해 자료상 및 허위세금계산서 수취 자를 조기에 적발하게 된다. 아울러 현금영수증·신용카드·전자세금계산서 자료를 사업자별로 통합, 분석하는 매출-매입 분석시스템이 운영된다.
부동산 거래에 대해서는 허위계약서 적발을 위한 취득가액 조기검증 시스템과 자금출처 조기검증 시스템이 가동된다. 이를 통해 이중계약서 혐의자를 사전에 적발해 기획조사가 실시되고 고액재산 취득자 중 자금능력이 없는 사람은 신속하게 선별돼 변칙 증여 검증 대상에 오르게 된다.
이같은 시스템을 통한 인프라 구축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LG CNS 출신의 임수경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이 지난해 개방용 임용으로 발탁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임 관리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세청 데이터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이를 전산정보화해서 시스템으로 구축해나가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시스템을 통한 세무행정의 진화는 반가운 일이다. 기존에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했던 일을 전산화함으로써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고 탈세혐의자 적발도 정교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좋은 시스템을 구축해놓고도 운용자들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거나 금품수수 등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신뢰에 기반한 진정한 세정개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기상청이 거액을 들여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도 여전히 어이없는 오보로 비판받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하드웨어가 갖춰진 만큼 이제 그에 걸맞은 소프트웨어가 작동해야 한다.
국세청 직원들은 업그레이드된 시스템을 십분 활용할 수 있도록 자기계발에 힘쓰고 윤리적인 면에서도 스스로에 대해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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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527호 (2010. 03.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