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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바꾼 김유신-김춘추의 '풋볼'
[연합뉴스 2010-06-24]

 

신판 중화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인 축구 또한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으로까지 진화한다. 영국의 럭비 경기에서 발전했다는 게 통설인 축구가 중국의 옛 스포츠인 축국(蹴鞠)에서 비롯됐다는 게 요지다.

 

실제 고고미술자료에 나타난 축국하는 장면을 보면 지금의 축구와 대단히 흡사한 모습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축국이라는 말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기록으로 보건대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전국시대 유세객으로 이름 높았던 소진(蘇秦)과 장의(張儀) 두 사람의 행적을 정리한 '소진열전'(蘇秦列傳)이라는 곳에서 가장 먼저 보이며 이후 중국인, 특히 권력자들이 즐기는 스포츠 중 하나로 자리잡는다.

 

바둑 또한 인기가 높아 이에 지나치게 탐닉해 패가망신하고 나라까지 망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한국사에서 이런 사례에 딱 맞춤인 인물이 백제 개로왕이다.

 

바둑은 여러 변종 스포츠를 낳았는데 그 중 하나가 탄기(彈棋)라는 놀이다. 글자 그대로는 바둑알 튕기기 게임인데, 위진남북조시대에 성행했던 흔적이 보인다. 개그맨 최양락이 한때 유행시킨 '알까기' 게임과 흡사했는지 모르겠다.

    
한데 이 탄기라는 게임이 다름 아닌 축국에서 유래했다는 재미난 기록이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南朝) 왕조인 유송(劉宋) 황실에 속한 유의경(劉義慶.403∼444)이란 사람이 각종 재미난 일화를 모아 엮은 책으로 세설신어(世說新語)가 있다. 그 얼마 뒤인 양(梁)나라 때 사람 유효표(劉孝標)는 많은 자료를 보충해 세설신어주(世說新語注)를 내놓는다.

 

요컨대 세설신어가 교과서라면 세설신어주는 참고서나 전과인 셈이다.

 

세설신어에는 탄기라는 놀이가 삼국시대 위(北)나라 궁궐에서 비롯됐으며 조조의 아들인 문제(文帝) 조비(曹丕)가 이를 즐겼다는 대목이 있다. 한데 유효표는 이곳에다가 부현(傅玄)이라는 사람이 지은 '탄기부서'(彈棋賦敍)라는 운문성이 강한 산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끌어다 보충자료로 삼았다.

"전한(前漢)시대 황제인 성제(成帝)는 축국을 좋아했지만 (당시를 대표하는 저명한 학자인) 유향(劉向)은 그것이 인체를 피로케 하고 힘을 소진케 하므로 지존(至尊)이 하기에는 마땅한 운동이 아니라 생각해서는 그 체제를 따라서 탄기(彈棋)를 만들었다. 지금 그 방식을 보건대 축국하는 방식이다."

이를 보면 축국이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운동이었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땀을 뻘뻘 흘렸을 것이다.

 

축국은 일찌감치 한반도에도 상륙했다. 축국과 관련한 가장 저명한 사화(史話)가 바로 김유신과 김춘추의 이야기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625년(혹은 626년) 무렵 김유신과 김춘추는 지금의 경주 시내 어느 광장 같은 데서 축국 경기를 했다.

 

김유신이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이 경기는 기록만 보면 두 사람만 한 것처럼 돼 있지만 틀림없이 편을 가른 팀 스포츠였다. 말하자면 이 경기에서 김유신과 김춘추는 각기 그들 팀을 대표하는 '캡틴'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친선경기라고 하지만 이 경기는 매우 격렬하게 진행된 듯하다. 595년생인 김유신은 당시 나이가 만 30세를 넘겼으니 그보다 9살이 적은 20대 초반의 혈기방장한 김춘추를 맞받아쳤다가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던지 '태클' 혹은 '유니폼 잡아채기' 전략을 구사한다.

 

이날 스코어가 어땠는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김유신이 김춘추의 유니폼을 잡아채서 찢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400년 전 경주 시내 어느 광장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한국사 전체를 뒤흔드는 발판을 마련한다.

 

김유신이 기획하고, 감독하고, 주연까지 한 이 고도의 '정치 스포츠 게임' 결과 두 사람은 마침내 처남과 매부가 되었다.

김유신은 찢어버린 옷을 기워 준다며 자기 집으로 데려간 김춘추를 누이동생인 문희가 혼자 있던 방으로 집어넣음으로써 마침내 '역사'는 이뤄졌던 것이다.

    
이 때의 만남을 통해 문희가 아들을 잉태하니, 그가 바로 아버지 김춘추의 뒤를 이어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一統三韓)을 달성한 문무왕 김법민(金法敏)이었다. 이들 부자를 김유신이 절대적으로 지원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지형을 김유신-김춘추의 축국이 단초를 마련했다고 해도 그리 허언은 아니다.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이번 남아공 월드컵 축구대회에서의 한국대표팀 선전을 보면서 그 옛날의 축국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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