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 재 언
한국일보 기자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내정자가 17일을 마지막으로 국세청을 떠났다. 청장 취임 후 정확하게 1년만의 일이다. 전임 청장의 평균 재임기간이 2년 이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임기는 확실히 짧았다. 하지만 그가 국세청에 남긴 족적은 결코 작지 않았다는 것이 국세청 내부의 평가다.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이런 평가가 결코 과장은 아니다. 사실 백 내정자가 국세청장에 취임할 당시 국세청은 '선장 없는 난파선'이나 다름없었다. 전임 청장의 잇단 불명예 퇴진으로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청장 공백 사태가 5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었다.
취임 후 한 달 만에 열린 전국세무관서장 회의서 백 청장 스스로 “지금이 국세청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고 강조할 정도로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그리고 진행된 국세청 개혁 작업. 국세청 개혁의 방향은 명료했다. 더 이상 '권력기관' 아닌 본연의 ‘세정기관’으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조직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위원들이 주축이 된 국세행정위원회를 설치하고, 공정한 인사를 위해 인사위원회를 만들어 평가기준도 직원들에 공개했다.
또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4년으로 정례화해 예측 가능성을 높였고, 납세자보호관을 신설하는 등 일련의 개혁 작업이 숨가쁘게 진행됐다. 개혁작업은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세청 조직은 적지 않은‘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본청 국장 10자리 중 3자리를 외부 영입 인사에 내줘야 했고, 본청 인원의 10%를 줄이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국민적 신뢰회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과 함께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재발돼서는 안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제 개혁작업을 주도해온 백 내정자가 청장에서 물러났다. 국세청 내부는 자연스레 후임 청장이 누가 되냐에 관심을 쏠리고 있다. 좀 더 좁혀 말하면 그 관심의 초점은 국세청 내부 인사가 청장 자리를 되찾느냐, 아니면 또 다시 외부 인사가 오느냐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국세청의 분위기는 내부 승진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1년간 뼈를 깎는 노력을 해 온 국세청으로서는 조직이 어느 정도 정상화된 만큼 이제는 외부 인사 영입보다는 내부 승진을 통해 조직의 사기를 높일 때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기대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여전히 내부 승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역사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이다. 초대 이낙선 전 청장부터 한상률 전 청장까지 16명의 국세청장 중 정통 국세청 내부 인사는 딱 절반이었다.
그리고 내부 승진 청장 8명 중 6명이 불미스런 사태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거나 사법 처리된 전력이 있다. 때문에 차라리 또 외부인사가 신임 청장 자리에 오는 것이 조직에 이득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청장이 되느냐(외부 인사 영입이든 내부 승진이든 간에)보다 국세청이 스스로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느냐에 달려 있다. 국세청이 더 이상 권력기관이 아니라 세정기관으로 제 갈 길을 갈 수만 있다면 청장이 누가 되든 상관이 없다.
정치적 외압을 막아내고, 인사청탁을 과감히 뿌리쳐 공정한 인사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청장 자격은 충분하다. 백 내정자의 개혁의 내용도 따지고 보면 ▲인사의 투명성 ▲세무조사의 공정성이라는, 국세청 스스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역대 청장 취임 때마다 반복돼온 단골 메뉴였지만 항상 용두사미로 끝난 반면 백 내정자는 이를 실천에 옮겼을 뿐이었다. 이는 후임 청장이 누가 되던 꼭 한번은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적어도 국세청이 과거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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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536호 (201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