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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3301]
<국세청기자실>감세정책과 사문난적(斯文亂賊)

         서 의 동
     경향신문 차장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최근 어느 토론회 자리에서 “강만수 갑자기 죽이고 싶어지네”라고 발언해 정치권을 들썩이게 했다. 직설화법으로 유명한 정 의원은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와 감세철회 방안을 놓고 번번이 충돌한 바 있다.

 

정 의원은 또 다른 자리에서 “강만수 특보는 감세귀신이 들려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발언의 진의가 어찌됐건 이 에피소드는 한나라당과 여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감세철회’ 논란이 꽤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에선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면서도 여전히 ‘부자감세’ 카드를 내려놓지 못하는 여권의 딜레마를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다.


감세정책 논란은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정치권의 수많은 이슈들과는 무게를 달리한다.  나라의 곳간인 재정이 악화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이기 때문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경제가 대외신인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비교적 넉넉한 외환보유액과 건전한 재정여건 덕이다. 우리나라가 2008년 금융위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넘긴 데는 이 두가지가 버팀목이 됐다는 이야기는 경제관료들이 심심치 않게 꺼내는 레파토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잘 견뎌왔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우선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지난해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고령화의 진전으로 복지지출은 자동으로 불어난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로 사회격차가 심화되면서 복지확대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여건 속에서는 정부가 돈줄을 아무리 죄더라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20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4대강 사업을 벌이는 통에 재정건전성은 나빠질 일만 남았다.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이 최근 펴낸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를 보면 우리나라 국가재정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110조원이나 부족하다. 특히 소득세 비중은 GDP대비 4.4%로 OECD평균(9.4%)에 비해 무려 5%포인트(약 50조원)가 낮다.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원인은 낮은 소득세율에 있는 셈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히 풀릴 수 있다. ‘부자감세’를 없었던 것으로 하면 재정균형은 곧바로 달성된다. 2012년에 시행토록 돼 있는 소득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철회하면 상당 정도의 재정확충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정부가 그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돌아가려 하고 있고, 이에 여권내 소장파들이 길을 막고 나선 것이 지금 상황이다.


한나라당이 법인세 감세 기조는 유지하되, 고소득층의 소득세를 조정하는 방식의 ‘감세 수정보완책’을 논의하고 있긴 하지만 ‘눈가리고 아웅’이다. 이 감세 논쟁은 아마도 2012년 대선국면까지 정치권의 핵심논란의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다.


기자의 생각엔 한나라당이 이 문제를 끌면 끌수록 결코 득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감세정책을 철회한다고 한나라당이 하루아침에 좌파로 몰릴 것도 아닌 데다 정책을 유턴하는 명분은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우선 금융위기라는 알기쉽고 훌륭한 ‘사정변경’ 사유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7·4·7공약’을 금융위기라는 사정변경을 들어 접은 전례가 있다. 그만큼 설명했는데도 등을 돌리는 지지자들은 그냥 떠나가게 놔둘 일이다.


감세가 부유층소비 증가로 이어져 내수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트리클 다운’(Trickle-down·낙수) 이론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어느 나라 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낡은 유물’이 됐다. 영국은 연간수입이 15만 파운드를 넘는 납세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40%에서 50%로 올렸다. 미국도 연 2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35%에서 39.6%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에서조차 부자증세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데 우리만 유독 감세에 집착하는 모습은 성리학에 대해 이단적 견해를 밝힌 이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처단하던 조선시대를 연상케 한다. 강만수 특보에게 정 의원과 소장파들은 사문난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리학이 폐쇄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조선이 몰락해갔던 역사도 잊지 말아야 한다.

 

※위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무사신문 제544호(201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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