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홍 규
한국세무사회 세무연수원 교수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서점가를 뜨겁게 달궜던 화두는 ‘정의’(正義,justice)였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잘 안 팔린다는 인문학 책이 각종 관련 서적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장식했다. 이런 열풍에 대해 부정의가 판을 치는 현실에 좌절하고 정의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정의를 찾고자 하는 동기라 보기도 하고, 순수한 인문학의 매력에 이끌렸거나 아니면 단순히 유행의 대열에 합류하여 시대편승적 바람으로 볼 수도 있다.
샌델의 책은 행복·자유·미덕(우애)의 가치와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밴담 밀 롤스 등 철학자들을 빌어 그들의 정의관과 도덕관 또는 자유지상주의나 공리주의 등 사상을 일상의 문제에 적용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정의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책 어디에서도 정의가 무엇이다는 정확한 답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도덕적 딜레마의 늪속에 더욱 빠진다는 사실확인 뿐이다. 해답을 보여주기보다는 정의에 관련된 문제를 논리적으로 사유하며 소크라테스적 끊임없는 물음의 대화법과 열정적인 토론방식의 강의기법에 매료될 뿐이다.
정의란 무엇일까. ‘정의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공정하고 올바른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가치로, 대부분의 법이 포함하는 이념(위키백과), 개인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네이버)’로 개념을 정리한다.
정의는 가치 또는 도리 등으로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개념이며 무엇이 바르고 옳은지에 대해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는 점 등으로 시대 장소에 따라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에 진리와 구별된다.
샌델은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탐색하고, 정의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공리주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자유지상주의),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공동체주의)중에 공동체주의 방식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공리주의는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파악하고 인간행위의 가치를 하나의 도량형으로 환산해 획일화 한다는 점, 자유주의는 계산의 문제로 파악하지는 않지만 존중받은 권리를 가려내기 전에 사람들의 기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므로 정의의 영역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함께 고민하고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공동체주의를 선호한다.
그러나 샌델이 거칠게 공격하는 공리주의야 말로 대부분의 민주국가가 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강력한 준거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샌델의 공동체적 ‘정의’를 관찰하면서 정답 없는 딜레마 속에서 상대주의적 정의개념을 인식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늘상 데리고 사는 ‘조세’에 대한 정의를 알아 보자.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조세전문서적은 조세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고 있는 듯하다. 있는 것도 그나마 조세의 본질(국가계약설 등) 정도만 언급하고 있지 조세의 정의(定意)는 개관하고 있어도 정의(正義)는 누락하고 있다.
‘조세정의’가 조세법이념의 한 요소로서 조세법에 대한 최고의 관심사이고 이는 조세법의 철학적 문제이나 이를 간과한 것은 이론 및 해석학적 측면에 유독 관심을 기울인 학문의 기능적 패러다임으로 보여 진다.
조세는 국고수입조달 목적에 존재하고 보조적으로 국가가 추구하는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조세의 사물본성을 파악하여 보면 사물이 본래 무엇이었던가 하는 물음과 조세라는 사물을 성립시키고 조세속성에 내재한 근본의 내용은 바로 재산권의 이전이며, 조세의 태생적 사물본성(事物本性)은 재산권의 침해적 본성이다. 또한 법치국가의 법에서 태어난다는 점에서 ‘법의 창조물’이다. 침해적 속성을 가진 조세를 다루는 기본원칙인 적정한 국고조달, 평등(공평)의 원칙, 명확성원칙, 효율성원칙, 최소징세비원칙 등의 ‘조세원칙’을 들고 있다. 조세원칙은 헌법과 같이 조세법이 따라야 할 근본규범 내지 지도원리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침해적 본성을 지닌 조세가 추구하자는 이념 내지 정의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조세정의(租稅正義)는 ‘평등’이라는 등식으로 주창되고 있다.
조세법 정의 역시 일반 사회원리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평등을 요소로 하지만 ‘있어야 할’ 당위적 조세법의 구체적인 정의는 조세원칙에 부합할 때만이 정의로운 조세법으로 그 인과성(因果性)을 갖기 때문에 조세원칙도 조세법의 정의의 모습이거나 정의의 실현수단으로 볼 수 있다고 보아진다. 오히려 비상전시상태에서 평등원칙 보다 국고조달이 우선될 수 있다면 조세원칙이 상위개념가치로서 작용하지 않을까. 따라서 조세원칙 상호간의 가치도 달라 질 수 있다고 본다.
즉, 재정학의 조세원칙 중에 상위원칙인 적정한 세수의 확보원칙, 공평의 원칙, 명확성원칙과 하위원칙인 과세중립성을 포함한 효율성 원칙, 최소징세비원칙이 서로 필요충분조건으로 또는 개별원칙 상호간 합리적인 비례성원칙과 조화성으로 작동될 때 조세정의의 모습으로 구현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국가성립을 공동체구성원들 사이의 자유로운 협약에 근거한 사회계약설입장에 비추어 보더라도 공동체의 일체성은 다분히 가변적일 것이며, 사회운영원리로 간주되고 있는 자유, 평등, 정의, 미덕(우애) 등의 이념도 이념 상호간의 충돌로 일관된 법칙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의 의견이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정하여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 결과에 그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다수결 원칙은 다수의 이익만을 고려하거나 다수의 우매한 결정을 낳을 때는 그 정당성을 잃게 되고 때로는 저항권에 의해 심각한 폐해를 낳는다.
최근 정부가 근로자의 신용카드소득공제제도에 대한 폐지계획을 발표하자 근로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국회와 함께 서둘러 진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조세정의의 잣대로 검토하였는지 아니면 혹여 근로자 다수의 이익만을 고려하거나 우매한 저항에 굴복하였는지 한번쯤 곰곰이 새겨볼 일이다.
정의 논의에 있어 일반적 사회정의와 조세분야의 조세정의는 속성상 차이로 기본원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정한 조세의 정의를 위해서는 상대주의적 요소보다는 절대주의적 요소로 계산되거나 논의되는 것이 오히려 공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인수분해 공식의 정답을 구하려는데 비전문가가 대부분인 다수결 선택의 결과를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 몇 사람의 선택이 중요한가의 문제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결 의사가 중요하지만 수리로 계량화되는 조세에 대한 토의는 엄정한 소수만이 조세를 논할 때 더욱 공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세정의의 실현은 밴덤의 공리주의나 센델의 공동체주의적 요소보다는 절대적기준인 ‘조세원칙주의’가 요청된다.
정부에서도 공정사회를 천명하였고 특히 병무와 더불어 조세부문에 공정한 정책을 펴고 있는 이때 세제심의와 세정에 중립적인 전문가인 세무사회 역할을 보충함으로써 공정한 조세정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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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551호(201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