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승 선
프레시안 기자
최근 국세청 지방청장 출신의 한 세무법인 부회장은 "세금을 알아야 부자가 된다"면서 알아야할 절세 비결의 하나로 "내야 할 세금 신고를 하지 않거나 미달하게 신고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조언했다. 정당한 세금 납부를 아까워하다가 나중에 적발되면 추징은 물론 징벌적 가산세로 큰 낭패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세정당국의 탈루 원천봉쇄 노력은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히 강화되고 있고, 앞으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개인사업자는 세무사와 세무법인으로부터 사전에 성실신고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제도까지 도입됐다. 올해 6월부터는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까지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일부 부자들은 여전히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것은 적발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빠져나갈 구멍이 아직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자기 발등을 찍는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같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외탈세를 뿌리 뽑기 위한 노력이 국제적으로 급속히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스위스의 비밀계좌'라는 용어는 옛말이 되고 있다. 당장 적발되지 않아도 나중에 걸리지 않을 보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이미 법안으로 제출된 스위스와 한국의 조세조약 개정안이 비준되면 정식으로 스위스 당국에 역세탈세범에 대한 세금 추징을 위해 해외 금융계좌 정보를 요청해서 전면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스위스뿐이 아니다. 국세청은 홍콩·말레이시아 등 조세피난처로 이용되는 국가들의 협조를 얻어 역세탈세 의혹이 있는 금융계좌를 조사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홍콩과는 아직 조세조약을 맺고 있지 않지만 올해 내에 탈세 조사 목적의 정보 취득을 허용토록 하는 내용의 조세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는 최근 조세조약을 맺어 조세피난처로 이용되고 있는 라부안에 국내 조세법을 적용하는 합의가 이뤄졌다. 또한 국세청은 파나마, 케이먼군도, 버진아일랜드 등 다른 조세피난처와도 조약을 체결하고 세정전문요원 파견을 준비중에 있다.
국세청은 해외금융계좌 정보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진척되면 최근 세간에 '탈세 종결자'로 불리는 시도상선 권혁 회장, '카자흐스탄 구리왕' 차용규씨 등이 홍콩 등지에 빼돌린 자금을 최우선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이 이들에게 부과한 세금 추징 규모는 엄청나다. 권 회장은 4000억원대, 차 씨는 7000억 원대에 이른다. 만일 국세청의 조사가 빈틈 없이 진행되어 이들이 실제로 세금을 추징당할 수밖에 없다면 사실상 파산을 면하기 어렵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막대한 자금을 숨겨온 부자들이 절반에 달하는 돈을 세금으로 추징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지난 6월 2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과 스위스 정부가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50%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협상 중이며 조만간 타결될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도 비슷한 협약 체결을 위해 스위스 정부와 협상 중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스위스 정부와 같은 내용의 협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 자금에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추징키로 한 이번 협약은 글로벌 국가들의 역외탈세 척결에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난 2년 동안 영국을 비롯한 글로벌 주요국가들은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와 탈세자 조사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전했다.
영국과 독일의 정부는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은닉된 자금에 대해 추징에 성공하면 우리 돈으로 수십조∼수백조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스위스가 과거의 은행 비밀주의에서 탈피해 역외탈세와 관련된 금융계좌 정보를 제공하는 데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자 그동안 스위스의 은행 관행에 비판적이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글로벌 세무 포럼에서 "스위스가 역외 탈세자를 규제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스위스가 비밀계좌 보유자 정보를 완전히 공개하고 있지 않아 OECD가 요구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스위스 정부는 "다른 나라의 세무당국이 탈세자 정보를 요구할 경우 정보 공유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내년 하반기까지 새로운 규정 도입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외탈세 조사를 책임지고 있는 국세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제 세계적으로 해외 재산 은닉은 언젠가는 걸릴 무모한 축재 행태라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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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558호(201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