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이 청사를 이전하며 민간에 매각한 토지가 수년째 공터로 방치되고 있다.
국가기관이 행정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며 민간에 매각했지만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용도변경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무려 139억원을 주고 토지를 사들인 민간기업은 5년째 땅을 활용하지 못해 파산위기에 몰렸다. 해당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서로 책임을 미루며 발뺌하기에 급급하다.
◇논란의 조달청 땅
조달청은 경기도 수원시 영통에 수원출장소를 운영하다가 1997년 12월 출장소를 폐지했다.
조달청은 출장소 부지 5천20㎡와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3천229㎡ 규모의 청사를 민간에 매각하기로 하고 2000년 4월 건물 및 토지의 용도를 행정재산용도에서 폐지했다.
조달청은 몇 차례 유찰 끝에 2006년 8월 ㈜엔젤이앤씨라는 민간업체에 토지와 건물을 139억원에 매각했다.
그러나 출장소 땅을 매입한 엔젤이앤시는 5년이 넘도록 해당 토지를 활용하지 못한 채 매달 5천만원 이상의 금융비용을 부담하느라 부도 위기에 처했다.
수원시가 특혜시비를 이유로 용도변경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측 "국가기관이 민간기업에 사기친 꼴"..소송 검토
회사 측은 조달청으로부터 구입한 토지를 활용, 다양한 사업을 펼칠 계획이었다.
조달청이 국유재산법에 따라 해당 토지와 건물을 행정용도에서 잡종재산으로 전환했고 택지개발촉진법상 택지지구의 토지는 준공일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지구단위계획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원시는 한일합섬, SK케미칼 공장 부지를 주거지역으로, KCC와 KT&G 공장부지를 주거 및 상업용도로 변경했거나 변경을 위한 절차를 진행, 토지를 활용하는 데 큰 걸림돌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회사 측은 이에 따라 수원시에 해당 토지에 대한 용도변경을 수차례에 걸쳐 요청했다.
그러나 시는 그때마다 "검토중, 예산 확보 시 용역 추진"이라고 회신했다.
회사 측은 거듭된 요청에도 용도변경이 이뤄지지 않자 조달청을 상대로 "토지 및 건물 매매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수원지법은 2009년 5월 "해당 토지는 공공청사 부지에서 행정재산의 용도를 폐지한 토지"라고 조정했고 회사 측은 이를 토대로 수원시에 용도변경을 거듭 요구했다.
이 와중에 수원시는 방치된 건물이 노후돼 청소년 우범지역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철거를 요청, 회사 측은 지난해 4억여원을 들여 건물을 철거하고 바닥을 포장한 뒤 주차장으로 개방했다.
그러나 수원시는 지난 1월 "해당 토지가 공공용지여서 행정용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다"며 용도지역 변경 불가결정을 통보했다.
회사 오갑균 대표이사는 "국가기관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며 용도까지 폐지해 민간에 매각한 토지를 민간이 계속해서 행정용도로 사용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며 "국가기관이 민간기업을 상대로 사기 친 꼴"이라고 흥분했다.
그는 "수원시는 그동안 SK케미칼 공장부지 등 대기업의 공장용지를 아파트용도로 거듭해서 변경해줬다"면서 "대기업은 되고 중소기업은 안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따졌다.
회사 측은 현재 해당 토지를 매입원가에 되사주거나 전체 토지 3분의 1을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용도를 변경해줄 것을 수원시에 요청했다.
◇수원시 "택지지구 공공용지 용도변경 불가", 조달청 "회사 측에 충분히 설명"
수원시는 문제의 조달청 출장소 부지에 대해 용도변경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공용도를 상업용도로 용도 변경할 경우 특혜시비에 시달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해당 토지를 구입할 예산도 없고 구입한다해도 당장 활용할 계획도 없다며 회사 측의 요구를 일축했다.
특히 정자동 SK케미칼공장 부지를 비롯해 수원역 주변 KCC, 화서동 KT&G 등의 공장부지 용도변경은 시의 도시계획상 필요 요건을 충족해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사안으로, 조달청 부지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시의 한 관계자는 "해당 토지에 대한 영통택지지구 개발사업 당시 공공업무 수행을 위해 지정된 토지로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할 경우 유사한 공공시설과의 형평성, 특혜문제 시비가 우려돼 용도변경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택지개발지구에 있는 공공용도의 부지는 사실상 도시기반시설에 해당하기 때문에 민간이 매입했다고 해서 용도변경해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시는 무엇보다 조달청의 토지매각 절차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달청이 해당 토지를 민간에 매각하기에 앞서 우선 국유재산법에 따라 행정재산용도를 폐지한 뒤 토지의 구체적 용도를 정해 수원시에 변경을 요청했어야 했다.
현행 제1종 지구단위계획 수립 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제안에 의해 용도를 변경할 수 있을 뿐 주민제안에 의한 공공청사 폐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달청은 용도변경 요청에 시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자체적으로 행정재산의 용도만 폐지한 뒤 민간에 서둘러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조달청의 한 관계자는 "토지를 매각하기 전 수원시에 용도변경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그러나 토지를 더는 활용할 계획이 없어 민간에 매각한 것이고 매각 당시 토지의 용도 등에 대해 회사측에 자세히 설명했다"고 변명했다.
◇회사 파산 위기 "합리적 방법 찾아야"..해결 키는 수원시에
수원시가 용도변경을 계속해서 거부하면 회사 측은 토지를 활용할 수 없어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다.
막대한 돈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토지를 매입했기 때문에 연간 6억~7억원에 달하는 금융부담을 더는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측이 행정기관을 직접 유치, 토지를 임대하거나 매각할 수 있지만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상황에서 행정기관을 유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해결책은 수원시에 달렸다. 해당 토지를 매입해 도서관이나 동사무소, 공원 등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시가 예산 부족으로 어렵다면 해당 토지를 용도 변경해 공공목적에 맞게 다양한 사업을 벌일 수도 있다.
회사 측은 이미 토지 3분의 1을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용도변경을 공식 제안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현재 땅을 매각한 뒤 '나 몰라라' 하는 조달청과 용도변경을 거부하는 수원시를 상대로 해법을 찾아달라며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민원을 제기, 조사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회사 측은 조만간 수원시와 조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회사 오갑균 대표이사는 "시내 중심상가지역에 있는 금싸라기 땅을 기한 없이 방치하는 것보다 주변환경과 조화롭고 시민에게 이익이 되도록 개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