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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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延豊)聖地와 形具 돌… 임신빈 본회 공제복지위원장

 

사순절을 맞이하여 가톨릭세무사회에서는 성지순례의 행사를 가졌다. 아침 일찍 잠실 종합운동장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유유히 흐르는 한강수를 바라보니 가슴속 먼지 까지 씻어 주듯 시원함이 몸 속으로 스며 들었다.

 

아직은 이른 듯 철쭉꽃의 꽃망울은 방긋방긋 피어날 준비태세를 하고 있고 연두빛의 옷으로 갈아 입은 수양버들이 한들한들 손짓을 하고 있었다. 길가에 노란 개나리꽃의 무리들은 가슴에 와 안길 듯 달려 오다가는 스쳐 지나치고, 이번에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분홍색 진달래꽃 다발이 안아 줄 듯 달려 오다가는 바람과 함께 스치고만 지나갔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연두빛 햇살이 눈 부셨다. 연풍(연풍) 순교성지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 삼풍리에 있다. 수안보 에서 조령을 넘어 문경새재 골짜기를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 오면 자그 마한 마을이 그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경기,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박해를 피해 충청도, 경상도로 은거지를 찾아 나선 교우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점촌, 상주 등지로 난을 피해 가는 요로가 되었던 곳이며 교우촌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성 황석두 루가는 "천주성교 공과”, "천주성교 예규”, "신명초행", "회죄직지”등을 번역하고 "성찰기략”을 저술하기도 했다.

 

 

연풍 태생 성 황석두 루가는 다블뤼安 주교, 오매트르吳 신부, 위맹민 신부 세 명의 서양신부와 장주기 요셉회장과 함께 서울로 압송되어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굴하지 않았다. 서양신부들은 자기네 때문에 애매하게 교우들이 붙들려 처형당하게 되자 잡아들인 신자들을 풀어 줄 것을 청하여 석방하게 하고 스스로 연풍포청에 출두하게 되었다. 이때 聖 황석두 루가는 주변인의 만류를 무릅쓰고 자기의 스승인 서양신부들을 따라 나섰던 것이다. 그때 서울에서는 국혼이 있게 되어 보령 갈메뭇으로 끌려 가서 1866년 참수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聖 황석두 루가의 유해는 선영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이곳으로 이장 안치 되었다. 이 묘소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둥근 돌이 세워져 있는데 가운데 주먹이 드나들 정도의 큰 구멍이 뚫린 돌이 눈길을 끌었다.

 

그 돌이 병인박해 때 사용했던 형구였다는 것이다. 대원군 박해라고 불리우는 가장 심했던 병인박해 때 대원군은 천주교를 뿌리뽑기 위해 교우들을 체포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던 사형으로 치명 (망나니를 시켜 칼로 목을 내려 침)의 방법을 썼다. 여기에서 비롯된 그 후에 치명의 뜻은 천주와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희생한다는 뜻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 치명의 방법은 많은 후유증을 남기게 되었고, 또 끔찍한 일을 하는 망나니를 구하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망나니의 품삯까지도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또 백성의 원성이 높아지게 되고 민심은 자꾸만 불신과 원망으로 가득 차게 되자 대원군의 입장도 난처해져 갔다. 그리하여 소리없이 사형을 집행하는 형구 돌을 고안해 낸 것이다. 올가미는 목에 씌우고 올가미 줄은 돌 구멍으로 빼내어 힘 센 장정들에 의해 잡아당기게 했다.

 

배교를 강요하여 순종하지 않을 때에는 세차게 줄을 당기게 하는 고문과 또 죽음을 당했다. 사람 대신 소나 말에 묶어 놓고 소를 때리면 소가 뛰는 바람에 결국 교우들은 숨을 거두고 말게 하는 잔인한 형을 가했던 형구 돌이었다. 형구 돌은 오랜 세월 동안 풍화작용을 입었건만 표면에 검붉은 자국같은 흔적은 그 당시 순교한 교우들이 흘렸던 값진 피의 자국처럼 느껴졌다. 연풍 포도청에서 병인년 박해시 순교한 교우의 수는 헤아릴 수 없게 많았다. 산이 높아 구름도 쉬었다 넘는다지만 산이 높은 까닭 만은 아닌 상 싶다.

 

생명을 걸고 인류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스 도처럼 순교의 원점 『사랑과 죽음』의 실천자인 선인들의 문경새재의 험한 길을 넘나들면서 구비구비 서려 있는 슬픈 내력에 구름인들 차마 그냥 넘지 못하는 양 머물다 간다. 순교자로는 1801년 이순이 루갈다와 1867년 공주에서 순교한 조 아우구스티노(1840∼1867), 병인년 청주형장에서 순교한 주순옥 (1832∼1866) 회장, 홍주감옥에서 순교한 간 그레고리오(1804∼1866), 충주에서 처형된 김말딩(1804∼1867)과 김마두(1828∼1867) 등이 알려 진다. 연풍포도청에서 병인년 박해시 김요셉(68세), 전바오로(23세) 등 많은 교우들이 형구 돌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한다. 그 분들의 죽음은 비록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다르다 하겠으나 하느님 뜻에 순종함은 같지 않을까. 남은 살리면서 자기는 죽는 것이 순교다.

 

즉 신의 기능을 가진 예수는 자기를 구하지 않았다. 자기를 살릴 수 있었지만 살리지 않았던 예수. 예수의 마음을 에로스의 사랑이 아니고 아가페적 사랑, 즉 대가를 바라지 않는 끝이 없는 사랑 그 이외는 아무것도 아닌 인류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큰 사랑, 이러한 것이 순교의 뜻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 회원들은 미사가 끝난 다음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잘 나타 내고 있는 "십자가의 길”을 돌며 기도와 묵상을 했다. 인류를 구원하는 힘은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쳐 이룩하신 예수님의 사랑임을 보여준 "십자가의 길”은 우리에게 사랑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게 했다. 사랑은 바렌타인 데이의 초코렛 맛처럼 달콤한 것만이 아니란 교훈을, 사랑에는 끊임없이 참고 견디어야 하는 인내와 고통이 따르고 나의 희생이 곧 사랑이란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 분들의 숭고한 사랑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지금 그 곳에는 미국에서 1960년에 한국으로 오신 정안빈 (세례명 로벨또, 미국명 로버트 릴리) 주임 신부님이 그 곳을 보살 피고 있다. 그 분은 수안보성당을 짓고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불러 들이셨다. 그리고 미련을 못 버리고 이 성지를 정하면서 성당을 또 지었다. 성지를 찾아오는 교우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하시고 40년이 넘는 세월을 오직 한국의 교우들을 사랑하고 선교하시다 80여세를 맞이하고 계신다. 귀화하신 그 주임 신부님께서 헌신적으로 쏟아내는 민족을 초월한 사랑에 무언의 감사를 드리며 발길을 서울로 향했다. 오는 길에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파란물의 충주호를 내려다 보며 만개한 벚꽃나무 그늘 밑을 지나왔다. 무릉도원에라도 온 듯 가슴 설레게 했고 곳곳에 피어 있는 꽃들과 신록과 싱그러운 맑은 공기가 이 행사에 참가하기를 잘한 처사라고 더 부추겨 주는 듯했다.

 


제 296호 (200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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