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년에 큰딸 내외의 초청을 받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착역이 있는 블라디보스톡의 땅을 밟았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산천초목이 우리나라와 다를 바가 없었는데도 사회주의의 원산지인 러시아 땅을 처음 밟아보는 감회가 다른 여행 때와 달랐다.
우리나라 작은 지방도시의 공항보다도 규모와 시설이 떨어진 비행장을 보면서 불안감마저 갖게 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의 순수함이 나를 끌 어 당기면서 긴장은 조금씩 흐려져 갔다. 블라디보스톡에 박물관과 시내관광이 끝난 후 딸과 손주, 사부인 우리 부부 다섯명은 사위가 사 준 비행기표를 들고 5시간 비행 후 이르크츠크 에 도착했다. 이곳은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우는 유럽풍의 건물들이 들 어선 유서깊은 도시다.
이곳 미술관의 작품들은 러시아 사람들의 자존심 을 높이는 데 손색이 없는 우수작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레닌파가 이끌었던 볼세비키는 10월혁명을 지도하여 정권을 잡고 카렌 스키 임시정권을 붕괴시키고 소비에트 공산국가를 세우면서 쁘띠 부르조 아적 우익 반혁명세력의 주동자들을 잡아 시베리아 벌판 끝으로 유배를 보냈던 곳이 이르크츠크였다. 유배당한 대부분의 사람이 귀족이었고 그들에게는 다행하게도 가족과 같이 생활할 수 있는 특별배려가 있었다.
그들이 생활했던 건물들은 지금 박물관으로 관리하고 있다. 전시된 가구, 집기, 그림, 사진 등을 통 해 그들이 귀족이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었다. 반지하실에는 그들의 발목 에 묶였던 쇠고랑줄이 뒹굴고 있어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가 박 탈당한 삶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철도의 건설, 교량건설 등 노역장 이외의 경우를 빼고는 항상 3m 정도 되는 쇠줄에 묶여 목띠에 매 달린 강아지처럼 살아야 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면 정치적 패배와 신 체적 부자유의 울분을 예술품에 쏟아 자기 혼을 승화시켜 나갔던 것같다. 그들의 운명도 악보 위의 리듬처럼 굴곡적이었으리라. 고물이 되어 한구 석에 방치되어 있는 피아노에서는 피끓는 절규같은 음율이 흘러나오는 듯 했다. 박물관 혹은 미술관에 걸린 화폭에 담겨진 그들의 예술적 작품의 우월 성은 감탄을 넘어 슬픔마저 느끼게 했다. 망향의 한이 가슴을 칠 때마다 붓을 놀렸으리라. 마음의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이 그림일진데 오직 켄버 스에 붓칠을 했으리라.
그들의 부인들은 천륜처럼 보이지 않는 우주의 질서 앞에 잠잠하게 수 공예 혹은 자수에 몰두하며 남편과의 슬픈 인연을 삭혔던 것같다. 눈보 라 치는 길고 긴 시베리아의 밤을 한숨과 눈물로 보낸 흔적이 빛바랜 수 예품 속에 숨어 있었다. 일생을 남편의 발이 되어 살아 온 그녀들이 어 쩌면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아녀자들의 자태를 닮았다고 느껴졌다. 쇠사 슬에 묶여 살다가 간 남편보다 그 옆에서 시중 들며 친족을 멀리하고 망 향의 한으로 가슴 멍들고 죄없이 죄인처럼 생활한 그녀들이 더 애석하게 느껴짐은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 고 사형의 극형을 시키지 않고 신체의 자유만 박탈한 벌이 얼마나 다행 한 일이었는가. 러시아교포 C사장이 내보낸 비서들이 타고 온 승용차가 뜻밖에도 대우 자동차 프린스와 기아자동차 캐피탈이었다.
가는 곳마다 초코파이와 종이 팩에 든 델몬트쥬스, 도시락라면은 러시아인이 제일로 좋아하는 인기품 목이었다. 더욱이 바이칼 호텔방에 있는 금성TV, 금성냉장고는 우리의 마음을 다뜻하게 녹여 주고 모국의 국력의 위력을 새삼 흡족케 했다. 우리 일행은 그들이 갖고 온 차에 편승을 하고 바이칼 호수를 향해 달 렸다. 길 양편에는 6m가 넘어 보이는 쭉쭉 곧게 뻗은 長松들이 우거져 있었다. 민가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칠흑같은 어둠이 빛을 몰아냈다. 낯선 이국에서의 밤이 숲속에 쌓여 달리는 차속에서 나 혼자 엉뚱한 생 각이 스쳤다. 러시아 말을 할 줄 아는 딸과 남편은 앞 차에 타고 있고 우리 차에는 잠든 손주와 사부인이 타고 있었다.
내 핸드백 속에는 우리 모두의 여비가 들어 있었다. 깜깜한 숲속으로 끌고 들어가 모두 빼앗고 버려진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 온몸이 오싹해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밤 9시경 C사 장의 별장(다체)에 당도해 차에서 내렸을 때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늘에는 자리 다툼을 하며 빛나고 있는 은하수가 보였다. 서울의 매 연에 쫒기어 공기 맑은 이곳으로 떼지어 몰려 온 듯한 별들이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반짝였다. 태고의 숨결이 담겨져 있는 이곳 민속촌처럼 C사 장의 다체도 통나무로 지어져 있었다.
이곳에 TV, 전기난로 등도 금성제 품으로 마음을 더 따뜻하게 녹여 주었다. 처음 계획으로는 C사장 다체에 머물면서 관광할 계획이었으나 전화연락, 교통편이 불편하여 바이칼호텔 로 숙소를 옮겼다. 바이칼 호수를 내다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위치한 호텔은 그림엽서를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켰다. 수백개의 강물이 흘 러 들어오고 있는 바이칼 호수는 잔잔한 물결이 은빛으로 유동했다. 그 리고 웅장했다. 호수를 보는 순간 "와! 호수다!" 이구동성으로 소리쳤 을 때 세 살짜리 손주만이 "아니야, 바다야!" 했던 것처럼 호수라고 믿 겨지지 않을 만큼 방대했다. 수면이 31,500㎢요, 길이가 636㎞, 제일 넓 은 폭이 48㎞고 제일 작은 폭이 4㎞이라 하니 바다로 보일 수밖에 없었 다. 수심은 설악산을 떠서 엎어 놓은 정도의 79㎞가 넘는다고 한다. 호 수 위에는 유람선과 이르크츠크를 오가는 연락선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저멀리 희미하게 순백의 천설의 봉우리가 보이고 갈매기가 날고 거울같 이 맑은 물 밑에는 물고기 떼의 회유가 유리알같은 물속에서 유희를 했 다. 호텔 정원에서 바라다 본 저녁노을은 조물주의 신비함이 가득한 풍경 이었다. 붉게 불타는 태양의 마지막 잔재는 하늘뿐 아니라 호수의 수면 까지도 빨갛게 물들여 놓고 호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이칼 호수의 낙조는 세계적으로 손꼽힐만한 장관의 황홀 그 자체였다.
바이칼 호수로 몰려드는 강줄기는 모두 360여 개가 있다고 한다. 이 렇게 받아들인 물은 오진 한곳 앙가라(ANGARA) 강만을 통해 토해 내고 있는 것도 신만이 가능한 작품이었다. 앙가라 강은 하나뿐인 방류구로 주변에 농지를 비옥하게 만들고 교통을 발전시키고 농공업을 풍요롭게 해 주는 구실을 하고 있었다. 겨울에 이 강변에 피는 설화의 풍경 또한 장관이라고 한다. 바이칼 호수는 천산의 하얀 연봉 밑으로 흐르는 얼음 녹은 물이나, 큰 강물도 작은 줄기의 물도 끌어 안아들이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배척함 없이 360여 개의 강물을 수용하고 자비의 마음으로 모두를 포용하는 호 수였다. 작은 물들이 모이면 방대한 힘이 생성된다는 원리를, 홍수가 몰 아 쳐도 넘치지 않는 겸손함과 가뭄이 들어도 부족함이 없는 여유를 인 간에게 보이면서 호수의 깊고 넓은 가슴과, 항시 움직임으로써 썩지 않 고 있다는 순리를 인간에게 가르쳐 주는 무언의 교육장이었다.
제 306호 (2000.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