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재 성
동아일보 기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게 더 어렵다.’ 중견기업의 임원으로 근무하다 최근 퇴직한 지인의 얘기다. 선거의 해를 맞아 연초부터 여야가 경쟁적으로 대기업 때리기 정책을 쏟아내고 있어 이 같은 그의 발언이 엄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는 양극화 확대로 고통을 겪는 중소기업과 서민의 인기를 얻어야 표가 된다는 생각에 집착한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 정치권이 쏟아내는 각종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실제 추진할 의사가 있다기보다는 서민과 중소기업 표를 의식한 립 서비스라는 의심을 살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집중을 방지하겠다며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위 10대 재벌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규제 부활’이라는 카드가 대표적이다. 출총제는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순자산 10조 원 이상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 출자 한도를 순자산의 40%까지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출총제는 1987년 도입된 이후 ‘강화(1994년)-폐지(1998년)-부활(2001년)-완화(2004, 2007년)’를 반복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최종적으로 폐지(2009년)된 것이다. 대기업 투자가 위축되면서 관련 중소기업 투자도 동반해 줄고 일자리도 감소하는 등 부작용만 커졌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판단이었다.
다행히도 대기업들이 이런 정치권들의 행태에도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동안 선거철마다 반복됐던 정치인들의 드잡이에 면역력을 갖춘 데다 정부가 이런 기업 때리기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최근 발표되고 있는 정부 정책 가운데에는 기업들에게 ‘혹시’라는 의혹을 갖게 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국세청이 1월31일 발표한 ‘2012년 세무조사 운영방침’이다. 연매출 100억 원 미만의 중소기업은 세무조사를 면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500억 원 이상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대폭 강화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100억 원 미만 중소기업은 법인세 납부대상 기업 44만 개 가운데 94%인 41만 개에 달한다. 이들 중소기업에 대해 탈세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물증을 갖춘 제보가 있거나 탈세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없는 한 세무조사를 벌이지 않겠다는 것이 올해 세무조사의 핵심방침이다. 또 지방기업, 장기 성실기업 및 사회적 기업이라면 매출액이 100억 원을 넘더라도 세무조사 비율을 낮추거나 조사선정에서 제외하는 등의 우대조치를 제공하겠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국세청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기업에 대해서도 혜택을 주기로 했다. 2011년 대비 상시근로자수가 3% 이상 늘었거나, 늘릴 예정인 중소기업과 5% 이상 추가했거나 추가 예정인 대기업에 대해서는 2013년까지 세무조사를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국세청은 이런 일련의 조치로 남게 될 조사인력은 대기업 세무조사에 집중 투입하기로 했다. 기업들의 규모와 위상에 걸맞게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투명성을 갖추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명분이다. 이를 위해 연매출액 500억 원 이상 대기업이 세무조사 대상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2011년(18%)보다 19%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또 매출 1조 원 이상 주요 그룹 법인에 대해서는 주식변동조사를 엄정히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세청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대기업 때리기’에 진배없다는 지적이 있다. 수입이 생기면 세금이 발생한다는 과세원칙과는 거리가 먼데다 대기업을 탈세범으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조세 전문가는 “일자리 창출과 소득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전혀 다른 업무인데도 국세청이 일자리 비율에 따라 세무조사를 2년씩 유예해주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세무조사 유예가 마치 선심 쓰는 일처럼 생색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명확한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세무조사는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말이 있다. 오이가 익은 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고 있으면 마치 오이를 따는 것같이 보이고, 오얏이 익은 나무 아래서 손을 들어 관을 고쳐 쓰려고 하면 오얏을 따는 것같이 보이니 남에게 의심받을 짓은 삼가라는 뜻이다.
국세청은 1월31일 세무조사 운영방침 발표를 통해 ‘올해 진행될 세무조사가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힘을 주고, 공정사회에 역행하는 지능적·고질적 탈세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대내외 공포하고 싶어 한 것으로 보인다. 보도 자료 제목을 ‘세무조사, 어느 때보다 공정·투명해 진다’로 만든 것도 그런 이유로 풀이된다. 하지만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국세청의 발표는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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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신문 제573호(20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