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장사들의 주주총회에서도 섀도 보팅(중립투표·Shadow Voting)이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그만큼 소액주주가 기업경영으로부터 소외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섀도 보팅 폐지조항을 담은 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의 18대 국회 처리가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상장사들이 보완책으로 마련된 전자투표제도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사 전자투표 도입 극히 저조
한국예탁결제원은 올해 들어 전날까지 전자투표제도를 신청한 상장사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14일 밝혔다.
전자투표제도는 소액주주가 주총에 출석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회사 측이 전자투표시스템에 주주명부와 주총의안을 등록하면 주주가 손쉽게 투표할 수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주총 전에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다음 달 `주총시즌'까지는 시일이 촉박하다. 신청 회사가 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2010년 5월 개정 상법이 시행된 후 현재까지 전자투표를 도입한 회사는 37곳에 불과했다. 그나마 1곳은 비상장사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페이퍼컴퍼니인 선박투자회사였다. 주주 참여를 확대하려는 본래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상장사들은 전자투표 도입을 꺼리는 이유로 시스템 불안 우려를 내세운다. 중요한 주총 안건을 전자식으로 처리하다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예탁원 측은 미국, 영국, 일본 등지에서 상당수 상장사들이 전자투표를 활용하고 있고, 국내에서 개발한 시스템은 공인인증서를 통해 접속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더욱 뛰어나다고 이를 반박한다.
예탁원 관계자는 "주주 참여라는 기본 가치가 껍데기만 남았다. 전자투표는 소액주주가 대주주를 견제해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제도인데 관심이 너무 없다"고 말했다.
◇섀도 보팅 남용으로 소액주주 소외 우려
저조한 전자투표 도입률은 대주주가 입맛대로 의안을 가결하기 위해 소액주주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결과라는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예탁원은 법규(자본시장법 제314조 5항)에 따라 주총 전 신청 기업에 한해 예탁된 주식의 의결권을 빌려준다.
이에 따라 대주주는 소액주주들이 주총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해 정족수를 맞추고, 주총에 참석한 주식 비율을 의안 결의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이를 섀도 보팅이라고 한다. 돌발 변수가 없으면 대주주 뜻대로 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섀도 보팅을 2015년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원활한 주총을 유도하려는 당초 취지와 달리 대주주의 지배력을 키우는 부작용만 일으켜 문제 조항으로 지목받았기 때문이다.
발행회사 주주도 아니고 실질 주주의 대리인도 아닌 예탁원이 사실상 의결권 행사를 대신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반영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 개정이 좌초됨에 따라 섀도 보팅도 당분간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에 노출될 전망이다.
경제개혁연대 이지수 변호사는 "대기업 주총에서 개미들이 의결권을 행사해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전체 주주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은 앞으로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