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10일 발표한 역외 탈세 유형을 보면 조세피난처를 악용한 재산도피, 탈세가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외국에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조세피난처로 이익을 옮기고 비용은 국내에 떠넘겨 소득을 인위적으로 축소하는 수법을 활용했다.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는 부유층 사이에서 상속세와 소득세 누락의 온상이 된지 이미 오래됐다.
해운업체 사주 최씨가 조세피난처를 활용해 탈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씨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 명의의 선박회사를 운영하다 수익과 매각 대금 1천700억 원을 스위스 등 제3의 조세피난처에 개설한 차명계좌에 숨겼다.
나이가 들자 거액의 상속세 부담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은닉 자금을 빼내 부인, 자녀, 내연녀 등 상속인에게 송금하거나 사용처를 불분명하게 조작해 물려줄 재산이 없는 것처럼 위장했다.
국세청은 최씨의 자녀 등을 상대로 상속세 등 1천515억 원을 추징하고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부동산투자업을 하는 재력가 서모씨는 선친이 친인척 이름으로 명의신탁한 기업 주식을 팔아 생긴 450억 원을 국내 유령회사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미국으로 빼돌렸다. 이 돈은 호화별장 구매에 사용됐다.
서씨는 외국 현지법인의 가공경비를 계상해 136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홍콩 계좌에 숨겨왔다.
서씨는 상속·증여세 680억 원과 국외금융계좌 미신고에 따른 과태료를 추징당했고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서씨의 사례는 부를 외국으로 영구히 유출해 놓고 국내와 외국을 오가며 호화생활을 하겠다는 '얌체' 부자의 전형"이라며 "선량한 중산층과 서민에게 조세부담을 전가하겠다는 반사회적 행위에 속한다"라고 지적했다.
국세청이 상반기에 적발한 민생침해 사례도 눈에 띈다.
사채업자 김씨는 상장기업 대주주에게 유상증자 자금을 빌려주고서 주금가장납입으로 금융감독원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해 하루 4%(연 1천460%)가 넘는 살인적인 고리를 뜯었다.
김씨는 세무조사와 수사를 피하려고 형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고 문제가 될만한 계약서, 사채이자 기록수첩 등을 차명개설한 은행 대여금고에 숨기는 교묘함을 보였다.
국세청은 이를 찾아내 대여금고를 강제로 개방했다. 금고에 있던 4상자 분량의 증빙서류를 분석해 탈루 이자소득 437억원을 찾아냈다.
국세청은 소득세 등 196억 원을 추징하고 조세법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건강보조식품 도소매업체인 A사는 순박한 농어촌 노인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해오다 국세청의 철퇴를 맞았다.
A사는 관광버스로 농어촌지역의 경로당이나 양로원을 방문해 공짜 관광·선물로 노인들을 끌어모았다. 유명 운동선수와 전문강사 등을 내세워 허위·과장 광고로 노인들을 현혹하고 산 값의 10배를 받고 홍삼 등 건강보조식품을 팔았다.
판매수량·단가 조작, 현금매출 누락 등으로 300억 원의 수입금액을 빼돌려 부동산 취득에 사용했다. 소득을 숨기려고 고객명단과 매출현황을 회사가 아닌 대표자 집에 있는 컴퓨터로 관리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A사에 법인세 등 274억원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식품수입업체인 B사는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가 인하됐음에도 가격을 내리지 않아 법인의 이익이 많아지자 묘안을 짰다. 판매점 인테리어 공사비를 과다계상해 부풀린 거짓세금계산서를 받고 차액을 종업원 등 차명계좌로 빼돌리는 수법이었다.
사주인 고모씨는 본인 인건비 60억원을 과다하게 지급받아 개인 자금에 사용하기도 했다.
수십만 명의 회원이 가입한 유명 상조법인인 C사의 사주 정모씨는 장의 용역 관련 유령회사를 만들어 상조부금 302억 원과 거래처 알선수수료 34억 원을 빼돌렸다.
이 돈은 자녀 유학비용, 부동산구매, 펀드투자 등 개인용도로 사용됐다.
국세청은 C사와 사주에게 103억 원을 추징했다.